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다




사랑의 그림자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른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너무나 큰 슬픔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포기하고파

아무런 일,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머무른 적 있는가? 

한동안 말문이 막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못하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사람을 떠나 본 적 있는가?

사랑의 추억이 있는 사람은 항상 사랑의 그림자를 안고 산다.

진실한 사랑의 배신은 그 사랑의 크기만큼 아픔을 동반하고 있다.

살면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산다는 건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기에는 너무나 슬픈 기억이다.

이런 기억들은 그저 의식적으로 지웠을 뿐이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장소나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다가오는 사랑마다 다 다른 사랑과 감정으로 만나고 관계를 형성할 것 같지만,

내 몸이 하나이듯 생각과 마음 역시 하나이기에 의식 밑바탕에는 항상 지난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므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인연 맺지만,

다시 시작한 사랑 역시 알게 모르게 지난 사랑과 성격이나 외모가 비슷한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고, 그 사람에게서 지난 사랑의 흔적을 쫓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사랑은 결국 자신의 모두를 주지 못하고 어느 순간 방황하게 된다.

서로 사랑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서로에게 익숙해질 쯤에는 지난 사랑과 비교하게 되어 작은 다툼일지라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때때로 아무런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한 사람과의 다툼이 그렇다.

이런저런 말과 행동은 오히려 자기합리화나 변명이 되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서로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무리 잘하고 못했던지 그것은 그저 과거일 뿐이다.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이란 굴레를 억지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언젠가 옛사랑이 다시 한번 찿아와 사랑했던 사람을 단 한번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된다.

다시 만나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자신의 지난 흔적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다.

가족이나 친구가 있음에도 마음을 둘 곳 없어 방황하게 되고, 사춘기 소녀처럼 텅 빈 거리에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슬프다.

늘 홀로인 듯한 적막강산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다.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기에 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워진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난 시절의 아름답던 추억을 떠올리게 되고,

삶 속에 묻혀있던 그 시절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사랑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어쩜 당연지사라 하겠다.

다들 안 그런 척들을 하지만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이것은 마음속 불륜이고 간음일수도 있겠지만 과거의 진솔했던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위안이다.

이미 시간 속에 원망마저도 다 희석되어 추억 속에 남아있는 사람은 그저 그리울 뿐이다.

오랜 세월을 되돌아 만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서로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기억 한 자락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래서 사람은 현재에 살고 있으면서도 과거 속에 사는 자들이다.

과거는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이다.

과거에 쌓아놓은 노적가리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 여유 있고 행복한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나 하는 일이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미래보다는 과거의 흔적을 그리워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추억이 많은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여유로운 마음을 갖자



요즈음은 모두들 살기 어려워 난리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신용경색이 팽배해 있다.

지인들과의 모임에서도 술도 거의 먹지 않아 그대로이고, 가급적이면 서로 돈을 쓰지 않으려고 해 분위기가 썰렁하기 그지없다.

 더러 실수도 하고 그래야 사람 사는 맛이 나는데 모두들 조심하려고만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모두 모임이 끝나면 돌아가기 바쁘다.

한마디로 마음의 여유로움을 잃어버린 것이다.

삶의 여유는 지금 하는 일이 아니라도, 얼마동안은 풍족하지는 않지만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 하는 일이 싫으면 언제든지 자신의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현대의 직장인치고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은, 어느 정도의 저축이나 재산적 여유는 마음과 정신적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늘 삶에 쫓겨 산다는 건 바로 이런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한 푼을 쓰더라도 기분 좋게 쓰는 것과, 다음을 걱정하면서 어쩔 수없이 쓰는 돈은 같은 가치의 돈이라도 엄청난 차이인 것이다.

미래가 불확실하게 되면 바로 이런 심리적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요즘이 바로 이런 시기인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올바른 생활 태도인지 정말 모르겠다.

매일매일 삶에 끌려 다니다보니 이제는 아예 노예근성이 몸에 배어서인지 익숙해져 버렸다.

가족 모두에게 풍족하지는 못하더라도 미래를 예비할 수 있어 모두가 만족한 삶을 살았으면 좋으련만, 수입이 고정되어 있어 늘 하나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얼마 전 알이 먼저라는 과학적 결론이 났다지만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고 다투는 것하고 무엇이 다른가 싶다.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식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하나도 채워주지 못하면서

그저 부모의 욕심 때문에 이리저리 자식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간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요즘 아이들이 세상을 당당하게 맞이하기에는 너무 어려만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모 역시도 미래를 모르기는 피차일반이 아닌가?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하고...

그러다 간혹 친구나 직장 동료와 어울려 술 한 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반복되는 이러한 일상은 바로 마음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이러한 정신적 피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삶을 위해서 억지로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가 좋아서 원해서 하는 일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왠지 짜증스럽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신바람 나고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능률적이지 않는가?

산을 싫어하면 어찌 그 험한 산길을 힘들게 올라갈 수 있을까?

인생 역시 그렇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일수록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스스로의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스스로가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시간적 여유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늘 종종거리면서 산다 해서 돈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너무 쫓겨 산다. 란 생각이 들 때는 자신의 인생에서 한 발 물러서 바라보게 되면 의외로 해결점이 쉽게 보인다.

너무 아등바등하면 자신도 모르게 정말 소중한 나의 가치를 잃고 살 수도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요즘 매사에 긍정적이고, 가급적 상대방의 입장에 서려도 노력한다.

화가 나고 짜증스러운 일이 생겨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넘어가려 하고,

내 생각으로 그 일을 판단하지 않으려 애쓴다.

아내의 입장에서, 자식들의 입장에서, 그리고 지인이나 동료들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스스로가 “이럴 것이다.”란 가정이 붙으면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으로 치우칠 때가 많다.

어려울 때일수록 돈도 잃고 소중한 친구도 잃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마음의 여유를 잃지 말고 보여주고 말하는 것들을 한 조각의 의심 없이 바라보는 것, 바로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신뢰가 아닌가 싶다.




가족이 필요한 이유



사람들이 왜 가족을 만드는지 아는가?

그것은 홀로 있기가 싫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다.

만인의 우상인 배우 장동건에게 있어서도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라고 한다.

아무리 유명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지라고, 누가 곁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세상에 오직 혼자라는 느낌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스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 자신을 이해하고 옆에서 지켜봐 줄 수 있는 배우자일 것이다.

우리에게 시련이 닥칠지라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바로 희망(希望)이다. 

무엇인가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이 최고로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즉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價値)들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존재하는 한, 누구나 신께서 허락한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의 시간 동안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할 의무가 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생활일지라도 가족과 더불어 함께 다투고 토라지고, 그러다 함께 웃고 떠들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서로 나누면서 말이다.

태어나고 죽음만 생각하면 어쩌면 간단한 것이 인간의 운명 일수도 있지만, 삶이란 바로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기에, 행복과 불행과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여정에서 지나치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인연들이 있다.

그 인연은 어머니 아버지로, 아내로, 자식으로, 혹은 친구나 동료로 만나게 된다.

무슨 이름의 인연이든지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처신에 따라 인연의 고리는 행복 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들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다.

가족은 바로 이러한 인연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고 든든한 버팀목임을 잊지 말라.




령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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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 가끔은 같이 하여 더욱,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도 생기더라구요 ^^;
        늦은 저녁..., 사무실에 홀로 앉아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혼자 멍하니 아무 생각없이 있는 경우가 저의 경우 자주 생기고 있습니다.
        세월에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하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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