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관심은 사랑이 아니다


지나친 관심은 사랑이 아니다.

제 자식밖에 모르는 어머니의 지나친 정(情)은, 정을 받는 그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해치게 된다.

버릇없이 자란 자식이 주위 사람 배려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요즘 대부분의 가정은 자식이 하나나 둘이 전부다.

예전처럼 어머니의 사랑을 나누어 가질 부분이 작아 거의 전부를 독차지 한다.

가지고 싶은 것 모두를 충분하게 충족되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사랑의 크기만큼 자신에게 베풀어지는 사랑의 가치를 모르고 자라게 된다.

어린 시절 스승에게서 심하게 맞은 회초리나 꾸지람이 더 기억에 남았던 것처럼, 사랑 역시 어렵게 얻어져야 그 가치를 몸으로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돌아오니 애쓸 필요가 없다.

우리의 몸이 원하면  공기와 물을 찾듯이,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사랑이기에 소중함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몸에 한 번 길들어진 습관처럼 어느 순간부터는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니까?”란 안이함이 커 어느 정도의 잘못을 저지려도,

아이를 기죽이는 일이라는 명목으로 가급적이면 용서하게 된다.

하지만 “안에서 새는 쪽박이 밖에서도 새고,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란 말처럼, 자식의 버릇없는 행동을 두둔하다보면, 어느새 자식은 자라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요즘과 같이 급변하는 교육과정에서 부모가 가르칠 것은 사실 거의 없다.

그래서 학원을 선호하게 되고, 아이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인성교육이니 예절교육이니 하는 기본적인 문제는, 크면 잘하겠거니 하고 넘어가게 된다.

늘 그렇게 자라는 자기 자식이 안쓰럽기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무한대로 주게 된다.

승용차로 태워오고 태워 가고하기에 조금만 비바람이 와도 아이는 부모를 찾는다.

엄마는 만능이다.

아이의 모든 문제의 해결점은 엄마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는 자신이 행하는 일의 공과(功過)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상을 사는 사람도 자신이고, 사랑과 슬픔과 행복과 불행 역시도 자신의 몸으로 느끼는 감정들인 것이다.

때문에 진정으로 “내 자식이 귀한 줄 안다면 험하게 키워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사랑이 오히려 자신의 몸보다 더 귀한 아이에게 독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자신의 사랑을 절제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지나침은 아예 없는 것만 못하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사랑을 베푸는 것에는 인색하다.

과부가 과부의 심정을 알고, 가난한 사람이 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처럼, 사랑 역시도 연습이 필요하다.

세상과 부딪치며 닥쳐오는 갖가지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찾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부모나 친구나 지인들은 그저 그 사람이 옳은 방향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거추장스러운 것은 없고, 원하지 않는 인생을 강요받는 것처럼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만큼 진정 행복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세상이란 무대의 주연배우는 오직 자기 스스로일 뿐이니까.



령혼™

단상·칼럼·포토에세이·저널리스트 김진철 웹사이트

    이미지 맵

    사고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