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선보인 김시아 데뷔작 「미쓰백」


<미쓰백> 

감독 이지원 / 출연 한지민, 김시아, 이희준 배급 리틀빅픽처스 / 개봉 10월 11일



세상에 맞서느라 어쩔 수 없이 험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다.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된 백상아(한지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람들과 등지고 살아간다. 자신을 도와주는 형사 장섭(이희준)으로부터 친모의 부고를 접한 이후, 상아의 앞에 학대 받는 어린 소녀 지은(김시아)이 나타난다. 무책임한 부모와 폭력의 세계를 앞서 경험했던 상아에게 어린 지은은 반드시 구원해주고 싶은 존재다. 그동안 ‘레옹’ 혹은 ‘아저씨’가 호출됐던 자리는 이제 ‘미쓰백’에게 돌아갔다.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진하고 눅눅한 감정, 서로를 지키기로 결심한 두 사람의 애틋한 결속이 감정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들 작품이다. 이지원 감독의 데뷔작인 <미쓰백>은 연일 아동학대 사건이 접수되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건드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새로운 아역배우 김시아의 등장, 거리낌 없고 강한 성격의 인물로 변신한 배우 한지민의 연기가 기대를 낳는다. <무뢰한>의 강국현 촬영감독, <더 킹>의 이나겸 미술감독, <밀정>의 모그 음악감독 등 노련한 스탭들이 함께해 완성도를 높였다.

진심은 살아남는다

드라마 마더와 같은 “감독의 의도를 지켜내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미쓰백>의 강가미 프로듀서는 최종 완성된 영화보다 “장르적인 느낌이 강했던” 시나리오 초고를 모니터링해주기 위해서 읽었다가, 내용이 너무 좋아서 준비하던 다른 작품 대신 이 영화를 프로듀서 입봉작으로 맡게 됐다. 그녀가 합류한 이후 이지원 감독과 의논하는 과정에서 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바는 “장르의 테두리 안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 진정성 있는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며 시나리오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촬영 들어가기 한달 전에야 투자사가 결정되는 등 제작 여건이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그녀는 ‘제목이 코미디영화 같다’, ‘<아저씨>의 아류 아니냐’ 등 수많은 의견으로부터 이지원 감독이 시나리오를 흔들림 없이 완성할 수 있도록 지켜내야 했다. 그러면서 강가미 프로듀서는 여러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두고 보십시오. 나중에는 세상에 둘도 없는 ‘미쓰백’이 될 겁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 합류하기 전부터 이미 아동학대 예방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 소속되어 있던 강가미 프로듀서는 유관기관의 협조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그가 가장 신경 쓴 것은 아역배우 김시아의 안전이었다. 그런데 김시아가 “매사에 너무 준비되어 있는 자세로 임해서 걱정이었다”고. “시아가 너무 참을성도 좋고 힘들다고 내색을 안 하는 성격이라서” 강가미 프로듀서가 알아서 먼저 힘든 부분을 찾아 헤아려줘야 했다. 올해 초에 방영된 드라마 <마더>보다 먼저 기획된 영화에 표절 의혹을 제기한 일부 온라인상의 의견에 대해서는 “떳떳하니까 오히려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대응 자체가 인정하는 모습처럼 비칠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와 전혀 다른 전공을 공부하며 대학원까지 진학했다가 그만두고 무작정 영화계로 뛰어든 그녀는 “왜 고학력자가 영화를 하려 하나?”라는 질문을 받으며 다소 늦은 나이에 제작부 막내를 시작했다. “밤을 새우며 차량 통제를 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던 시절이다. 왜냐하면 내가 차를 통제해야 배우들이 연기를 시작하니까.” 이번 영화 <미쓰백>은 그녀로 하여금 “저예산의 어려운 소재를 다룬 영화를 온전히 메이드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준 뜻깊은 작품이다. 덕분에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하더라도 더 즐겁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강가미 프로듀서의 차기작은 임필성 감독의 영화다. 또 그녀가 감독의 의도를 온전히 지켜낼 영화들에 미리 응원을 보낸다.




여성과 아이, 서로를 마주 보다



<미쓰백>의 장섭(이희준) 캐릭터에 관한 세간의 평가는 엇갈린다. 여성주인공의 위치를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도움을 주는 남성 캐릭터라고 호평하는가 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를 해결하는 장섭이 여성의 연대라는 주제의식을 해친다는 불만도 있다. 나는 캐릭터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관심 없다. 다만 극중 장섭의 역할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는 사실만이 나의 관심이다. 사건의 개입에 용이한 형사 장섭의 역할은 두드러진다. 반면 백상아(한지민)와 김지은(김시아)의 행위는 ‘약자의 연대’라는 주제 차원에서만 사후적으로 풀이된다. 경찰서에서, 터미널에서, 공사 중인 공터에서 장섭은 위기에 처한 백상아를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미쓰백>이 상아와 지은의 이야기로 남는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언하면 <미쓰백>은 드러나는 액션으로서의 서사보다 꾹꾹 눌러진 감정의 서사가 더 중요한 영화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미묘하게 그려지기에 그만큼 포착하기 어렵다. 미묘한 선택들이 익숙한 설정의 곁가지로 환원될 위험 역시 존재한다. 상아와 장섭의 관계가 한 남자의 순애보처럼 해석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아와 지은의 관계 역시 ‘모성’의 코드 아래서 이해되곤 한다. 둘의 관계가 모성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조금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천편일률적인 모성 재현의 포화 속에서, 모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성취인 시대다. <미쓰백>은 ‘엄마 되기’를 지속해서 호명하고 어머니로부터 전해온 상처의 대물림을 짚지만, 끝내 상아를 통해 어떤 모성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상아가 하고자 하는 것이 정말로 ‘엄마 되기’라면 그것은 정의되지도, 묘사되지도 않은 채 도중에 멈춘다. “단 며칠 만이라도 엄마 해라”라는 장섭의 대사만 남을 뿐 상아와 지은이 함께했을, 혹은 함께하지 못했을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생략이다. 영화는 모성을 새롭게 쓰기 위해 일단 모성을 쓰는 것을 거부한다.




모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두 여성의 관계



드라마 마더와 같은 모성에 관한 영화적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지은의 입원을 위해 서류를 작성하던 상아가 ‘관계’를 쓰는 칸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이때 지은이 나타나 상아를 잡아끌면서, 둘은 입원을 포기한다. 끝내 칸은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칸은 채워지지 않았어야 했다고 믿는다. 이 의도적 실패가 관계의 실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관계의 빈칸은 이들의 관계가 애초에 불가능했음을 표시하는 것으로도 보이고, ‘모성’이라는 단어로 이들의 관계를 환원하지 않으려는 영화의 의지로도 보인다. 에필로그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풀이된다. 단란한 가정의 일원이 된 지은의 아침 풍경 속에 상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엔딩숏은 지은이 다니는 초등학교 앞에서 마주 선 두 사람의 롱숏이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간격은 영화가 의도적으로 비워둔 칸이다. 정의되지 못한 관계는 진한 감정의 파고를 남기고, 그것은 모성의 틀로 환원될 수 없다. 이들의 관계가 모성으로 환원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지은의 캐릭터가 묘사되는 방식 때문이다. 영화는 성인 여성과 어린 여자아이간의 필연적인 힘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 이는 지은의 선택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상아가 지은에게 요구한 ‘미쓰백’이라는 호칭은, ‘아줌마’, ‘선생님’ 등 나이나 권위를 떠나 수평적 관계를 쓰려는 신호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지은은 연약한 피해자로 그려지기보다 의사 표현이 분명한 적극적인 주체로 묘사된다. 이를테면 상아와 지은이 만난 첫날의 포장마차 장면에서 지은은 상아의 손을 슬며시 잡고 놓지 않으며 자신이 위기에 처했음을 분명히 표시한다. 월미도 놀이공원 장면에서 상아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지은의 손길에 놀란다. 이 장면은 상아가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상아와 친모의 관계가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순간적으로 상아와 지은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기능을 한다. 나에겐 후자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모성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역류한다. 터치와 포용은 의외로 지은으로부터 상아에게로 향한다. 숙소에서 상아가 내보인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도 지은의 손길이다. 이 순간에는 그 어떤 플래시백이나 서사상의 개입도 등장하지 않고 서로에게 기댄 두 사람의 모습만을 오롯이 비추면서 비로소 두 사람만의 감정이 탄생했음을 표시한다. 이제 상아는 지은을 통해 죽은 엄마를 애도하는 대신, 지은과의 관계를 위해 기억 속의 엄마와 대화한다.

상아와 지은의 수평적인 관계를 위해 제시된 지은의 주체성은 그러나, 무력하거나 무해하게만 그려지는 아이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이상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 엄마에 관한 콤플렉스로 엄마 되기를 두려워하는 상아의 치유를 위해 지은의 고통이 사용된다고 누군가가 비판한들 영 틀린 말로 생각되진 않는다. 그러나 지은에게 가해진 학대의 재현에 관한 문제 제기가, 실은 학대당하는 아이라는 프레임 속에 지은을 욱여넣은 탓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무엇보다 지은을 실제 학대당하는 어린아이로 인식해야 할지, 영화적인 캐릭터로 인식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지은의 탈출 장면 때문이다. 지은은 ‘미쓰백’에게 가기 위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화장실의 좁은 창문을 통해 집에서 탈출한다. 이 장면이 리얼리티에 바탕을 두었다고 한들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장면이 관객에게 스릴러 장르 영화에 가까운 긴장감을 주었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 장면이 지은의 캐릭터를 연약하지만, 의지와 힘을 지닌 인간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했다.




아동학대 재현에 관한 비판에 덧붙여



여성 캐릭터의 재현에 관한 고민은 필연적으로 다른 약자의 재현에 관한 고민과 맞닿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미쓰백>은 여성 캐릭터와 여자아이 캐릭터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여성 캐릭터만큼이나 많은 아이들이 영화에서 피해자로 등장하며, 때로는 죽거나 유괴당한다. 여성 캐릭터가 주로 수동적인 피해자로 묘사되어 온 데 대한 불만으로 능동적으로 묘사된 캐릭터를 환영하게 된 상황과, 지은의 캐릭터 재현 방식을 겹쳐본다면 딜레마는 더욱 커진다. 지은은 실화에 기반을 둔 영화 속 피해 아동의 묘사와 달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를 환영해야 하는가, 직접적인 재현 자체를 거부해야 하는가. 상아와 지은의 상처는 두 사람이 만나기 위한 필연적인 전제였고, 관객에게는 이들의 감정에 공감하기 위해 이들의 상처가 필요했다. 지은의 학대 묘사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굳이 영화에서 폭력을 재현하지 않아도 학대 아동들이 겪는 피해를, 두 사람의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동을 향한 폭력은 재현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피해 아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의 고통 때문은 아닐까. 영화의 오락성을 강조하며 현실의 문제를 다룬 작품을 외면하는 흔한 반응과 <미쓰백>의 폭력 재현에 관한 비판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 <미쓰백>은 아이의 숨소리로 사운드를 가득 채우며 관객을 지은이 있던 자리에 잠시라도 있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순간 어두운 화장실 구석에, 차가운 베란다 바닥 위에, 차갑고 위태로운 난간에 당신은 있었나. 혹은 굳이 그런 방식으로 감각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할 텐가.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선보인 김시아 데뷔작 「미쓰백」



그 어떤 조·단역 작품도 없이, 김시아는 스크린 데뷔작인 <미쓰백>으로 존재를 알려왔다. 방치와 폭력을 일삼는 아동학대의 음지에서 미쓰백(한지민)의 손을 잡고 뛰쳐나온 아이 지은이 그의 생애 첫 역할이다. 올해 11살. 한없이 유순한 인상이지만, 무표정에선 일찍 철든 아이의 근심과 결연함이 묻어난다.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선보인 데뷔작에 이어 굵직한 차기작 "클로젯" 행보를 앞두고 있다.


클로젯 2019 감독 김광빈 촬영감독 최찬민

제작 강명찬, 김영훈, 손상범 프로듀서 정원찬 시나리오 김광빈 제작 (주)퍼펙트스톰필름

(주)영화사 월광 배급 씨제이이앤엠(주)









 “이런 나라도, 같이 갈래?”



아동학대와 성폭력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전과자가 된 백상아(한지민)는 이를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형사 장섭(이희준)으로부터 과거 자신을 학대했던 어머니의 부고를 전해 듣는다. 마음의 흉터를 품은 채 간신히 삶을 추스른 인물의 일상이 다시 한번 요동칠 때쯤, 그의 앞에 학대의 흔적이 역력한 어린아이 지은(김시아)이 나타난다. 추운 겨울 골목길에서 마주친 둘의 조우는 필연처럼 묘사됐다. 시간 차를 두고 과거와 미래를 공유하는 두 여성의 연대는 서로의 공통된 경험에 기반해 몇 마디 말 없이도 단단한 결속을 이룬다.

<미쓰백>은 이 과정에서 차츰 모습을 드러내는 사회의 편견, 부실한 안전망, 아동학대 가정의 복잡한 실상과 그 안에 자리한 밑바닥 군상을 쓰다듬는다. 게임중독에 빠진 지은의 아빠 일곤(백수장)과 계모 미경(권소현)처럼 뒤틀린 인물들조차 안쓰럽긴 마찬가지다. 연민하고 이해하거나, 혹은 처절하게 서로를 착취하는 여러 빛깔의 관계들이 진한 감정으로 영화를 물들인다. 한손에 아이를 안고 내달리는 액션 스릴러의 쾌감 대신, 쉽게 돌파하기 힘든 상황을 끝까지 붙드는 클로즈업 화면으로 들끓는다. 무엇보다 <미쓰백>은 배우 한지민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기에 더욱 반가운 영화다. 화려한 외양과 허스키한 목소리, 투박한 제스처를 지닌 미쓰백 캐릭터를 통해 한지민에게서 그동안 본 적 없었던 거칠고 불균질한 에너지들이 튀어 나온다. 우직한 로맨스의 주인공이자, 관객의 정의감을 대변하는 인물 장섭을 연기한 이희준, <마돈나>(2015) 이후 악역으로 변신한 권소현, 학대받는 아이의 상처입은 얼굴을 잘 담아낸 신인 김시아 등 제 몫을 충실히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면면 또한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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