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사람에게



하루에 한 번 사랑한다고 말하자



얼마 전에 TV에서 중년의 나이에 sex에 대한 욕망은 크지만, 아내와 남편에게 서로 만족한 성관계를 얻지 못해 갈등하고 있는 중년들의 모임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아이들의 양육과 일에 치여 삶을 살다가, 나이가 들어 이미 중년이 되어 sex에 대한 욕구는 강한데 성욕을 감퇴되고,

상대에 대한 사랑의 느낌은 예전 같지 않아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덧 중년이 되어 버린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쓸쓸한 기분에 빠진적이 있다.

이는 아내는 아내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직분을 다하지 못 하는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카운셀러들은 서로에게 가장 즐거웠던 부분을 떠올려 극복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서로 상대방에게 마음이 떠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닫혔던 마음의 벽을 허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서로에게 익숙해진 것들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상대가 좋아하는 부분을 연출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미국 시카코에서 여성 6백명에게 <남자 및 여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란 앙케이트 조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조사 결과 남자는, 첫째가 돈을 버는 일, 둘째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일, 세째는 남편의 역할을 제데로 하는 것과, 여자는 첫째는 어머니의 일, 둘째 아내의 일, 세째가 가정을 돌보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남자에게 있어서는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여자에게는 아이를 보육하고 양육하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나타내는 의미있는 조사이다.

서양 격언에 <가난이 방안으로 들어 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나가 버린다.>란 말이 있다.

잘 사는 것과 행복한 것은 엄연이 다르고, 경제적 여유가 바로 행복한 인생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할 만큼의 경제적인 독립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에 있어서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와, 생각과 행동의 폭을 넓게 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다.

흔히들 남편을 바깓사람, 아내를 안사람이라고 한다.

이 말은 남편과 아내가 생활의 분업을 통해 서로를 보완하여 가정의 행복을 가꾸어 가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요즈음의 여자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만 들어가도, 자신만의 공간을 찾기 위해 직장을 가질려고 애쓴다.

물론 생계를 도우려는 목적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생계도 도우면서 자신만의 자유로운 활동영역과 경제적인 독립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아이를 보육하느라 버렸던 자신의 시간을 보상 받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남편의 눈치를 안 보고 자기가 번 돈으로 스스로의 취미를 기르고, 

사회적으로도 누구의 어머니나 아내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갖고 활동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생계를 돕고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찾기 위해 시작한 일이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깨뜨리는 단초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버는 돈에 비해 지나치게 씀씀이가 헤프고, 

남편과 아이의 눈을 피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항상 자신에 대한 절제와 일의 목적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여성이 하는 일은 대부분 남자의 일을 보조하는 단순 직종이 많기 때문에, 가정에 매여 일상생활을 하다 낯 선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누구에게나 행복의 척도는 다 다르다.

행복은 단란한 가정에서, 자식이 휼륭하게 성장하는 모습에서, 남편이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이 모두 간접적인 것이지 자신의 땀과 노력에 의해 쟁취한 행복이 아니기에,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최상의 만족을 얻고 싶은 것이다.

부부란 남남끼리 모여 성관계를 매개체로 하여 서로간에 애정을 교환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운명의 공동체다.

신혼 때는 sex를 방해할 만한 요소가 없어 오롯이 성관계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애정의 밀도가 높아, 항상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행복이 가득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크나, 점차 아이가 태어나고 약육 문제와 생활비의 가중으로 인한 경제적인 소요가 증대됨으로, 남자의 사회적인 활동이 가정에서의 일과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움으로 자연스럽게 가정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러다보니 부부가 함께 잠자리에 들기가 어려워지고, 애정의 바로 미터인 성관계의 횟수가 점차 줄어드는 만큼 서로를 바라보는 애정의 크기도 같이 줄어들게 된다. 

이럴 때 일수록 아내는 가급적이면 남편이 가정으로 돌아와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내는 점차 어머니의 사랑으로 옮겨간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이란 말이 있듯이, 여자는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위해서는 세상의 어떤것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늘 자신과 살을 맞대고 애정을 나누는 남편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여자는 남편과 자식에 대한 사랑을 적당한 크기로 배분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식에게는 아버지의 위치를 배려하고 가르쳐야 하며, 남편에게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요즈음은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특별하게 구분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맞벌이 부부가 많기에 아내가 밥 할 때 남편은 방 청소하고 설거지 하는 가사 분담을 하기에,  일방적으로 가사를 돌보지는 않는다. 

아이들의 양육도 시간이 있는 사람이 맡아 분담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자신의 직분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남자는 일에 살고 여자는 애정에 산다.

남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에 맞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여자는 남자에게서 흡족한 애정을 받았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sex가 터부시 되는 것이 현실이기에 서로 말을 꺼리지만,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sex이다. 

왜냐하면 가정의 구성요소 중 가장 중요한것이 부부이고, 부부를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끈은 sex이기 때문이다.

서로에게서 만족한 성관계를 얻지 못하면 점차 서로에게서 멀어져 함께 살고는 있지만 거의 남과 같은 상태로 남게 된다.

때문에 부부가 성관계를 나눌 때는 몸도 마음도 상대방을 배려하도록 애써야 하며, 진정으로 서로를 간절하게 원하는 느낌이 전달될 수 있도록 최상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말하고, 꺼림낏 없는 진실한 육체의 움직임으로 표현해야 한다.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오르가짐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기 때문에, 성의 능력에 너무 치우치기 보다는 멋진 분위기에 멋진 둘만의 공간에서 충분히 말하고,

성의 본능이 살아나도록 충분하게 서로를 탐닉하는 전희와 애무를 하라.

그리고 즐거라.

성관계는 마음이 즐겁지 아니하면 진정한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다.

집중하라.

서로에게 요부가 되고 번강쇠가 될 수 있도록 잡스런 생각일랑 모두 잊고, 오로지 성관계에 의식을 집중하라.

하루에 한번씩 서로의 얼굴을 바라 보자.

하루에 한번씩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하자.

하루에 한번씩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도록 손을 잡아 보자.

그리고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 더 커질 수 있도록, 하루에 한번씩 서로에게 사랑한다 말 하자.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어제 요즈음의 계절에 관한 글을 찾기 위해 에세이집을 뒤적이다,

김형석님의 에세이집에서, 단풍을 비롯하여 예쁜 나뭇잎들이 책갈피에 곱게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1997년, 경기세무고등학교, 적성종합고등학교 다닐 적에 끼워 놓은 나뭇잎이다.

낙엽은 희생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엽록체가 파괴된 뒤 잔류된 영양분과 효소의 작용으로 노란색 또는 붉은색의 단풍으로 변하는 것처럼, 낙엽은 기후의 변화에 따라 추운 날씨로 인한 손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영양분과 수분을 단절시킴으로써,

땅으로 떨어져 썩어서 새로운 영양분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글의 소재가 되어 인생을 노래하고, 화가에게서는 쓸쓸하고 허망한 표현으로, 작곡가에게는 이별에 대한 아픔으로 가슴저린 선율로 묘사되었다.

낙엽이 떨어지고 첫눈이 푸른하늘의 뭉개구름 처럼 흩날리는 계절이 오면, 문득 프랑스의 시인인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이란 시가 생각난다.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벼운 낙엽이 되리라.

낙엽에 주는 추상적인 이미지는, 대부분 쓸쓸한 이별, 슬픔,

그리고 죽음 등의 단어들로 나열될 수 있으나, 은행잎 만큼은 묘하게 노란색의 색감 만큼이나 가슴 따뜻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노란색은 명도 차이가 커 어디서든 시선을 잡아끌고, 노란색의 옷을 입은 여성은 왠지 발랄하고 경쾌한 한 이미지를 주기에,

낙엽이 갖는 낙하의 속성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분이 우울하거나 탁하지 않다.

노란 은행잎이 물든 가로수가 있는 거리나 공원을 걸어보라.

쓸쓸함보다는 멋진 연인이나 보고픈 친구를 불러 데이트라도 하고싶은 마음이 절로 생길 것이다.

이때쯤이면 초당초등학교에는 은행잎으로 덮혀 한번쯤 이거리를 거닐며 아이들과 예쁜 사진 촬영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 절로 든다. 

차에도 지붕 위에도 그리고 지나가는 아이들의 해맑은 어깨에도 은행잎은 곱게 나플거리는 노랑나비가 되어 앉는다.

하지만 이렇게 곱고 예쁜 은행나무에 열린 은행에서는 간난아이의 변같은 냄새을 풍겨 사람을 혼비백산하게 한다.

은행나무는 공손수, 행자목 또는 잎이 오리발을 닮았다고 해서 압각수라고도 부르는 나무의 신사다.  

우리나라에서 은행나무는 한방재료로도 쓰이는데, 은행은 기침, 가래 천식에 좋으며, 은행잎은 혈액장애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낙엽은 시기적으로 가을과 겨울이 만나는 길목에서 찬기온을 이기지 못해 단풍이라는

가장 화려한 마지막 생명력을 불태우고 일생을  다하기에, 잎이 사라지고 남은 앙상한 나뭇가지가 주는 허전함과 초라함 때문에,

이루지 못 한 사랑이나 사연을 은밀히 간직한 죽음처럼 슬픈 애상을 남긴다.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빰이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에 꿈 고이 간직하였더니

아~ 그 옛날이 너무나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에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이 가을에 중년이면, 노래방에서 한번쯤 불러보는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에서처럼, 애잔하고 스잔한 기분이나 인생에 대한 맛을 조금은 알만한 나이에다,

품에서 점차 벗어나려는 아이와 삶의 허무함이, 계절의 쓸쓸함과 더불어 심금을 울리게 된다.

학창시절 곱게 물든 단풍을 모아 책갈피에 끼워 영어사전을 눌러서 말린 뒤, 편지지에 붙여 사춘기의 풋풋한 사랑을 나누던 첫사랑 소녀와,  알콩달콩한 사연을 간직한 채 헤어졌던 추억은 누구든지 가슴 한구석에 묻어 놓은 소중한 기억의 파편이다.

세상이 아무리 삭막하고 인정이 메말랐다 해도 마음만큼은 언제나 자신이 주인이 아닌가?

찬바람이 덩그러니 부는 이 겨울의 초입에서 낙엽이 주는 이미지보다는, 은행잎의 따뜻한 느낌을 살려 가슴 한구석에 숨겨둔 사랑의 감정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사랑만큼 따뜻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오직 한 사람에게



누가 뭐라고 해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once, end only once, end for me only - 한 번, 오직 한 번, 그리고 오직 한 사람에게>란 말을 꼭 기억하고, 가급적이면 노력하였음 좋겠다.

사랑도 다양하고 복잡한 요즈음에, 오직 한사람에게 일편단심 사랑의 감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렵고 험란한 일이지만, 어럽기 때문에 지고지순한 사랑은 더욱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 역시 사랑이다.

자신이 선택하고 사랑한 사람이라면, 시간과 능력과 관계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지킬 수 있는 각오와 용기와 신념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편리에 의해 사람의 감정을 저울질 하는 인스탄트식의 사랑은 결코 해서는 안된다.

브룩실즈가 주연한 영화 endless love는, 영화보다는 endless love(끝 없는사랑)란 말이 너무 좋아 늘 기억한다.

풋풋한 사랑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제이드와 데이비드가 사랑을 찾아 애태우며 방황하고...

부모의 뜻에 반한 미처 자라지 못한 사랑이기에 아무리 말리려고 해도 말릴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으로 결말나지만,

사랑하는 열정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영화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이성에게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그순간 부터 일 것이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agape나 philia가 아닌 두 사람 즉 남녀의 eros적 사랑이다. 

하나님이나 어머니의 희생적 사랑이 아니라,남자 여자가 만나 나누는 감정이 교류하고 공유되는 사랑을 말한다.

사랑은 이성적이라기 보다는 감성적이기에 충동적이고 의외성을 갖기에 더 정열적이고 뜨거울 수 있다.

남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본인들에게는 최고의 사랑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남들의 시선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랑은 진정한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용기가 없으면 진심으로 가까이 하고 싶은 이성에게 다가갈 수 없으며, 지혜로움이 없으면 어렵게 쟁취한 사랑을 지키지 못한다.

능력이 부족하여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내는 것 만큼 남자가 비참한 것이 없기에,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소한 둘의 사랑을 지킬 만큼의 사회적인 직위나 경제적인 능력만큼은 갖추어야 되리라 생각한다.

오해와 갈등과 질투는 사랑의 크기에 비례하여 오기 때문에 항상 서로가 마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 받고 싶어한다.

사랑만큼 일방적인 것도 없다.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슴절절한 사랑의 대화나 연기를 보면서, 한번쯤 나도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란 욕망은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낙엽이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에 찬바람이 도는 거리와 왠지 텅빈 마음의 허전함을 느끼는,

이 겨울의 초입에 서면,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지나온 삶을 한번쯤 되돌아보게 되고, 외로운 마음에 힘겨워 하게 된다.

겨울은 추위 때문인지는 몰라도 왠지 사람들간에 친밀감을 더하게 한다.

어색한 연인들이라면 오늘이라도 야외로 데이트를 나가보라.

길 가다 포장마차에 들러 따뜻한 오뎅 국물이라도 나누어 마셔 보고, 낙엽이 떨어진 텅빈거리를 아무런 말없이 무작정 걸어도 보라. 

잠시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팔짱을 끼게 되고, 손을 감싸고,

어깨와 몸을 서로에게 기대게 되어, 마음으로 몸으로 서로에 대한 진한 감정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지혜롭게 마음이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려야 서로 평생의 반려가 될 수 있다.

둘만의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어려운 일이 닥치면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젊은이든 아니면 나이든 중년이든 솔로면 이번 겨울이 다가기 전에 멋진 사람을 만나 사랑의 약속을 하라.

둘만이, 둘이기에 가능한 약속을...






욕망



무엇을 하거나 가지고 싶어 간절하게 바라고 원하는 마음이 바로 욕망이다.

이성에 따르지 않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느낌에 대한 갈구, 그것이 바로 욕망이다.

우리 몸의 다섯가지 감각기관은 항상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사람은 눈, 귀, 코, 그리고 혀와 몸의 촉각을 다 만족시킬 수 없기에,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그 부족함을 찾아 다니고 있다.

결혼하여 사랑하는 여자를 소유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여자를 찾아 바람을 피우는 것도, 이러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머리로, 말로 사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영혼과 육체가 완벽하게 일치해야만 느끼는 오르가즘이다.

남자나 여자가 자신의 연인에게 아무리 잘 해 줘도 육체의 만족이 없으면,

서로에게 실망하고 후회하고  갈등하게 되어 결국 이별이라는 아픔을 겪게 되고 마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속궁합>이란 말이 있다. 

남녀가 사랑을 지키고, 그 사랑을 좀더 성숙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성관계를 통한 친밀감이 더해져야 비로소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있다.

소녀경이나 금병매, 그리고 카마슈트라 등 성에 관련된 책이나, 도색잡지, 포로노 등과 같이 sex와 관계되는 책이라도 보면, 무슨 변태니 색마니 하고 타부시 하지만, 남.녀 공히 궁금해 하고 호기심을 갖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40세가 넘은 중년 부부가 아직까지 성관계를 가지면서 정상위만 고집한다면, 과연 그것이 순수하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성관계는 서로의 사랑을 견고하게 하고, 서로에게 만족한 성을 제공함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고 개선하기 위해서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은 결국 이러한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눈은 어떤 사물을 보면서 그 사람이 가지는 미적인 면과 호감도에서 만족을 느끼는 색욕이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곁으로는 안그런척 하지만 눈은 항상 이성을 향해 있다. 

애인이 있는 사람이나 결혼을 한 사람이라도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한번쯤 사귀어 보고 싶은 욕망이 들고,여성이 울퉁불퉁한 건강한 육체미를 가진 남자를 보면 한 번쯤 그 품에 안겨보고 싶은 것은, 바로 눈으로의 욕망, 즉 색욕 때문이다.

귀는 소리에 대한 욕망이다.

가을에 듣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나, 여름날 맑은 계곡의 물소리와 같이 귀를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소리는, 마음을 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맑게 한다.

이성이 들려주는 벼갯가의 속삭임이나, "사랑해."란 말들은, 이성을 더욱 흥분하게 하는 것처럼...

코, 즉 향욕은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싶은 욕망으로, 들꽃의 질박하고 수수한 향기와 봄바람에 은은하게 묻어오는 여인네의 향수를 맡게 되면 저절로 코가 벌름거리고, 기분이 야릇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혀의 감각은 미욕 또는 식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이다.

길을 가다 고기를 굽는 식당을 지나가면 절로 침이 고이고, 때가 되면 배가 고파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촉욕이란 몸에 닿는 느낌이다.

처음으로 이성을 만나서 손을 잡았을 때, 손바닥에 촉촉하게 땀이 고여 당황한 경험은, 사춘기를 거친 성인이라면 다 경험 했으리라.

이성과 몸을 부딪치고, 서로의 육체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다.

진정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다섯가지, 인간이 가진 감각기관 모두가 동원되어야만 진정한 사랑의 만족을 경험 할 수 있다.

눈으로 자신과 어울리는 이성을 판단하고, 귀로 사랑의 고백을 듣고, 코로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를 맡고,

혀로 사랑의 대화를 하고, 몸으로 이성을 간절하게 느껴야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몸으로 하는 대화 만큼 진솔한 것은 없다.

몸으로 직접 부딪치고, 몸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껴야만, 비로소 행복한 삶을 사랑하는 사람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다.

욕망은 미래에 대한 도전정신이고, 사람은 정신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산다.

욕망이 없음은 살아도 죽어 있는 것과 같기에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담금질하는 것이다.





자신이야 말로 세상의 근본이다



흔히들 말하기를 참사랑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고, 진실한 사람이란 남에게 거짓없이 대하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보여주는 자신일 뿐, 내면의 자기가 아니다.

스스로가 남보다 더 잘 살고, 더 건강하며, 더 부자이고, 더 행복하고, 더 많이 사랑받기를 원한다.

행동이나 말, 자신의 분신인 친구, 마음의 연인인 사랑 역시도 자신이란 마음속에 있는 소유물이다.

마음이 풍족해야만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해야만 만족을 얻는 것이 인간일텐데, 세상은 온갖 미사여구와 화장을 동원하여 내면의 소리를 가로막고,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지적이고 이성적인 가치관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겉 포장을 잘한 사람이 대접 받는것이 사회다.

사회란 이러한 내면적이 가치와 외면적인 가치가 충돌하고,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기에 삶이 어려운 것이다.

남들이 옳다는 길이 반드시 자신에게 옳은 것이 아니며, 자신에게는 진리이지만 남에게는 그저그런 평범한 가치일 수도 있다.

서로에게 각자의 18번곡이 있듯이 각자의 인생이 놓여 있기에, 자신의 판단으로 남을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이해하는 열린 마음으로 공존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상을 떠도는 한낮 미진에 머물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을 마주하고 도전하려면,  내가 아니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기에,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음미하고 말하며, 촉감으로 느끼고, 몸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의 삶에 있어 정의나 진리가 인생의 지표는 되지만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인생의 목표는 누가 뭐래도 행복이요, 만족이란 욕망이 될 수 밖에 없다.

죽음에 이르러 스스로가 자신을 돌아보고 "나도 그런데로 잘 살다 가는구나." 라고 만족할 때가 가장 행복한 죽음의 순간일 것이다.

삶이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 까지의 상태를 말하며, 죽음은 삶이 끝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죽음을 보면서 느끼는 죄책감은 자신과 가까울수록 더 큰 무게를 지닌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자신의 삶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지진과 해일로 수십만의 사람이 한순간에 죽음에 이르고, 교통사고나 병으로 장례식장이 메어터질 정도로 죽음의 의식을 치루지만 그 참상과 느낌은 단 한사람의 혈연의 죽음에 비할 수 없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춘 후 부터는, 하루하루가 자신의 육신을 조금씩 죽이면서 산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도, 수많은 정자 중 살아 남은 하나가 난자와 결합하여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경쟁을 뚫듯이, 사회에서도 하루도 경쟁하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남보다 좀더 많은 행복과 기쁨을 누릴 기회를 제공 받기를 원하고, 한 계단 한 계단, 조금씩 조금씩 보태는 삶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당연한 욕구인지도 모른다. 

부모나 자식이 아프고, 심지어 살을 맞대고 사는 사람이 아파도 육체적으로 자신은 전혀 그 아픔을 느낄 수 없다.

마음속으로나 정신적으로, 시각이나 청각으로는 아픔을 느끼고 괴로워 하지만, 몸은 그 아픔을 모르기에 웃고 떠들 수 있는 것이다.

부모나 형제, 혹은 친구와 같은 지인의 아픔을 자신의 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면, 어찌 부모에 대한 효나, 형제에 대한 우애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소홀하게 할 수 있을까?

난 때때로 나 자신에게 섬뜩 놀랄 때가 있다.

그래도 스스로 자책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 사는 도리는 하고 산다고 자위하지만, 부모에게나 형제에게 처신하는 나를 되돌아 보면,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노력도 없이,

이기심에 빠져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았음을 느낄 때마다, 왠지 모를 허탈감에 힘겨워 하게 된다.

세상에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욕심부리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보살필 사람이 있기에 욕심을 부린다.

자신이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삶의 의미 역시 퇴색할 수 밖에 없다.

가족 구성원과 친척과 친구, 그리고 나의 삶과 인연의 사슬에 묶여 돌아가는 그들이 바로 나의 전부이며, 바로 나의 인생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남 보다 조금이라고 강하고, 조금이라고 부자이고, 조금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라기에, 남자는 일에 자신을 건다. 

그렇기 때문에 외롭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뜨거움을 안고 산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결국 자신의 존재를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내가 가진 능력을 알고,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알고, 그 역량의 가치를 아는 것이야 말로 스스로를 아는 것이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은 없다.

세상은 내가 보고 있음으로, 내가 느끼고 있으므로, 내가 듣고 만지고,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음으로, 비로소 존재한다.

세상에는 오직 두가지의 사람만이 존재한다.  내게 필요한 사람과 필요없는 사람이다.

남에게 끌러가지 말고, 남에게 등을 보이지 말며, 남에게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지 말라라.

오늘의 친구도 돈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음을 잊지 말라.

뜨거운 가슴으로 말하고, 냉정한 머리로 판단하라.

세상은 누구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똑같은 크기로 열려있다.

세상은 항상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으므로, 자신이야 말로 세상의 근본임을 잊지 말라!






창조적인 생각이 세계를 이끈다



“창조적 생각의 출발점은 바로 예술입니다. 시와 음악, 미술, 공연 등 예술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요. 여기서 바로 창의력이 나오게 되죠.”

이 말은 세계적 best-seller <생각의 탄생>의 작가인 Root-Bernstein 교수의 말이다.

<애플>의 CEO (최고 경영자, Chief executive officer)인 스티브 잡스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월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읽는다.

<펩시> CEO, 인드라 누이와 <버진>의 리처드 브랜슨은 수준급의 기타리스트다. 

빌 게이츠는 수시로 미술작품과 역사적 유물들을 수집하고, <사치앤사치>의 케빈 로버츠는 틈날 때마다 무용수의 동작을 따라한다. 

이는 그러한 예술을 통해 자신의 창의적인 사고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이다.

세계의 천재였던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피카소의 공통점은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자유자재로 자기의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머리로 아무리 창의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그것을 현실에 구체적으로 접목시킬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면, 결국 공염불에 그치는 것과 같다.

선진국이란 이러한 창의적인 생각들이 창조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사회 및 기업의 system이 발달한 나라를 말한다.

창조성이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스스로 찾아내 해결하고, 무언가 재미있는 것들을 발굴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는 기존사회의 일반적인 가치를 뒤집고, 한단계 upgrade 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흔히 기업들은 전문가, 즉 해당분야에 전문지식을 가진 인재의 채용을 선호하고, 교육위 목표도 이런 전문인재를 육성하는 것에 촛점을 맞추고 있으나, 전문가는 대부분 모두가 아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지, 창조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총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또 다른 재창조의 능력은 모자랄 수밖에 없다.

또 능력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자신의 분야 이외에는 시야가 좁아져 근시안적인 사고에 안주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는 매일 초고속으로 변하고 새로운 문제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와 문제점들을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통찰력을 가진 '뭔가 많이 해 본 사람'

즉, 다방면에 걸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창조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며, 이러한 사람이 기업의 CEO나 사회의 Leader가 되어야만, 창조적인 사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미래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것이다.

독서나 문화예술의 경험을 통해 사고의 폭이 유연해야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남 보다 앞서 갈 수 있으며,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미래는 이러한 종합 선물세트적인 사고를 가진 자가 각광 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21C의 사람이 되려면 기존의 통념을 과감히 벗어던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도 많이 구할 수 있고,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다.”란 말처럼 근면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각광받는 시대는 이미 과거다.

제조 공장을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과거 인력에 의존했던 일들은 이미 로봇이나 기계설비에 의해 대체되어 버리고, 사람들은 라인에 배치되어 기계설비를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음을...

과거의 노동기반사회에서는 근면.성실이 강조되었다면, 지식기반사회인 21C의 핵심가치는 <재미>이다.

사는 것이 재미 있으면... 일하는 것이 재미 있으면 자연스럽게 근면.성실해 지고 부지런하게 된다.

재미가 없으면 하는 일이 노동이 되고 고통이 된다.

일이 즐거움이 되고, 일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만,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갖고 푹 빠지게 된다.

재미와 감동이 있는 사회야 말로 창조적인 가치를 높이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창조적인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어쩜 '실패'는 필수다.

실패에 대한 관용이 살아있고, 실패의 경험을 사회의 가치창조에 활용할 수 있는 토양의 밑거름으로 접근 해야만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란 말처럼,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관찰하여 다시 재도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풍도가 조성되어야만이,

창의적인 사고를 가진사람이 더 많이 창조적인 도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더많이 도전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일 하지 않고 노는 사람을 양성하는 분배보다는 살려고 노력하고, 일 하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일 자리를 제공하고, 재기하여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몇 번이라도 줘야 한다.

그래야  일의 가치를 알고 너도나도 신바람이 날 것이 아닌가?

정보가 넘쳐 흘러 어느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조차 식별하기 어려운 다양성의 사회에 살 고 있는 요즈음에는,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과 정보를 결합하여 가치를 창조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성공여부가 갈라지게 된다.

이런 다양성의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천재가 아무리 능력이 탁월하다 해도 혼자 전부를 주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창의적인 인재에 의한 창조적인 능력의 배양을 위해서는, Team을 구성하여 적극적인 뒷받침을 해야 만이,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개념의 제품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나 기업으로 우뚝 솟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여자와 사랑



순진한 여자의 마음을 훔치기에 여자들은 남자를 흔히 “도둑놈”이라 한다. 

마음을 훔치는 것은 여자만의 전유물이 아닌데도 자신들은 순수하고, 착하고, 그럴려고 하지 않는데, 남자가 꼬시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사춘기 소녀에게 남자는 말미잘, 멍개 등 못생기고 징그러운 존재이지만, 사랑을 하게 되면 멋진 왕자고, 자신만의 배용준이고 조인성으로 변해버린다.

요즘 40세의 코요태 김종민은, 자신이 데뷔하던 시절에 6살이었으며, 14살 연하인, 26세, TV 조선 기상캐스터 황미나 양과 사귄다고 한다.

방송이라고 하여, 돈을 벌기 위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비즈니스 커플인 줄 알았는데, 볼 때마다, 설렘이 가득한 걸 보면, 진지한 만남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14살이나 어리고, 너무 멋진 커리어우먼, 젊은 26세, 황미나 양과 사귀는 40세의 김종민은 흔히 도둑놈이라고 부른다.

이런 여자는, 항시 자신의 주변에서 자신만을 위하여 노래불러 주기를 바라고, 자신만을 지켜주는 머슴이 되기를 원하는 마님이 되어 버린다.

결혼 전에는 함께 음식을 먹을 때도 조심 조심스럽게 조금씩 오물거리며 먹던 여자도,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어가면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용감한 어머니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남자는 항상 여자에게서 첫사랑 같은 분위기의 여자를 원하며, 아내 같은 여자보다는 애인 같은 여자를 원한다.

나이가 들수록 여자에게는 남성호르몬이 많아져 남성화되어 지고, 남자는 여성호르몬이 많아져 여성처럼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강호동과 탁재훈이 그러하다.

여성호르몬이 많아졌다는 것을 고백한 것을 보면.

여자는 남자처럼 점차 대범해진다.

성에 있어서도 그렇다보니 남자는 점차 성욕이 감퇴 되어지는데 여성은 성욕이 강해지니 어쩜 부부싸움은 당연한 것이 아니가 싶다.

옛 어른들이 여자를 꼬마신랑에게 시집보내는 관습은 이런 의미에서 정말 지혜로운 것 같다.

에로 영화의 고전을 보면 마님은 젊은데 남편은 대개 나이가 많은 영감으로 묘사되어 있고, 머슴은 패기만만한 울퉁불퉁 근육의 김종국이다.

물론 인물이 잘생기고 육체미가 좋다고 하여 성의 능력이 강한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속담에 <보기 좋은것이 먹기도 좋다.> 란 말처럼 관음의 즐거움 역시 성의 한 방편이고 보면, 무시만 하고 넘어갈 일만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 주고 받는 것이 균형을 이룰 때 참다운 신뢰가 쌓이게 된다.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것도 힘들지만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는 것도 힘든 일이다.

따뜻한 말을 주고받고, 미소와 웃음을 주고 받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 인간 관계이지만,

가능하면 줄 사람에게 주어야 하고 받을 사람에게 받아야만이 진정 행복하다.

사람은 주고 싶은데 주지 못해서 괴롭고, 받고 싶은데 받지 못해서 안타깝다. 이것이 사랑이다.

요즘은 여자가 주도하는 사회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남성이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성이다.” 란 격언처럼 남자는 여자의 품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현실 가정에서 봐도 여자가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도 엄마를 찾아 의논하고, 용돈도 타서 쓰고, 남편도 아내에게 아쉬우면 손을 벌리게 된다.  

하지만 세상의 반은 여자이고 반은 남자이듯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 사랑으로 이해하고 다독거리며 함께 살아가야만이 서로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혼처를 만나지 못해 결혼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남자가 싫어서 결혼을 못한 사람은 그만큼의 인생을 잃고 사는것과 같다.

여자의 사랑과 아내로서의 사랑, 어머니로서의 사랑이 여자의 일생이듯이, 아이를 가르치고, 남편을 내조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이로 인해 힘들고 어려운 일을 극복하는 용기도 삶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생살이에 무슨 정도가 있겠는가?

남보다 특출나지 못한 보통 인생이라면 스스로 즐기고 만족하는 삶을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입장 차이



입장 차이는 당면한 상황에서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른 상태를 말한다.

지금은 구속되고, 2007년 당시,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 지지자들은 BBK나 위장취업과 같은 도덕성 보다, 경제회복에 대한 열망이 대통령 자질에서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반면, 그 당시, 신당과 정동영, 문국현, 이회창 후보는 도덕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자신이 적임자라고 하고 있다.

모두들 국민을 앞세우고서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지금으로부터 25년동안 나아지지 않은 실생활 환경이 지난 정권의 실정 때문이라고 믿기에,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을 안고 있다.

일반 국민이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보다는 침체된 경제를 회복할 적임자를 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나의 사물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은 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하고 그렇게 유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지식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이러한 입장 차이를 여러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사물을 판단하기에, 삶의 실패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남이 바람을 피면 불륜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이다.

남이 천천히 운전하면 소심 운전이고 자신이 하면 안전 운전이며, 설거지 하는 남자를 보면서도, 남은 공처가 자신은 애처가이고, 남의 자식이 어른에게 말대꾸하면 버릇없는 아이고, 내 자식이 하면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소신 있는 아이라고 추켜세운다.

나이가 들면 참으로 많은 자유를 잃고 살아야 하는 것 같다.

특히 여자를 대하는 것에는 더 그렇다.

괜히 사람들에게 구설수에 오르고 시선이 부담스러워 아름다운 여자를 아름답다 말하지 못하고,

여자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술이라도 한 잔 같이 할 때는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불편을 안고 있다.

자신이 떳떳하면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시선은 그렇게 옳고 관대하지 않음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다 안다.

사람은 만날수록 정이 들게 마련이기에, 자주 만나는 사람은 또다시 만나도 할 말이 그만큼 많아지고, 뒤돌아서면 또 보고파지고 그리워짐은 어쩜 당연하다.

일반적인 사회의 관점은 시대의 흐름과 일치하기에 스스로의 소신과 주관을 갖고 객관적인 사실에 의거 판단함이 옳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자기주장이 뚜렷하다 보니 건방지고 예절이 없다.” 라든가,

“혼자 사는 여자나 각종 일에 종사하는 도우미는 성에 문란하다.' 라는 것은 그냥 통념일 뿐, 누구보다 열심히 떳떳하게 살고, 윗 어른을 공경하고 남을 배려하는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들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입장 차이라는 것도 자신의 주장만 너무 내세우면 사람이 고집 세고 못나 보이기 십상이다.

타인의 말을 끝까지 듣는것이 대화의 기본이듯이, 타인의 주장에 귀를 기우릴 줄 아는 성숙된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입장 차이는 결국 선택을 강요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갈 것인지,

다른사람의 의견에 따를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기에, 대화를 통해 협상과 타협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조정을 통해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과,

갈려고 하는 목표로 상대를 끌어들이고 함께 동참하게 하는것이야 말로, 사람이 사회생활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특히 사랑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상과 결혼이라는 현실이 맞물려 돌아가는 현상에서 비롯된다.

자신에게 있어 사랑은 내 인생의 전부였지만, 그 여자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하나의 과정이고 선택의 조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세상의 어떤 일보다 사랑이 최우선이었고, 사랑을 쟁취하고 지키는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절실했다면,

그 여자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이 쓰는 시간중에 사랑은 한부분이었지 전부가 될 수는 없었기에, 일을 위해서는 사랑도 과감하게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입장 차이에 놓이게 되고, 그럴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서 번민하게 되고 안타까움에 몸부림 치게 된다.

하지만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라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선택은 신중하게 하고, 한 번 선택한 길은 되돌아 보지도 말고 과감하게 한걸음 도전하는 용기와, 끊임없는 인내만이 필요할 뿐이다.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듯이, 내가 알고 있는 남에 대한 말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쩜 불가능하다.

없을 땐 나랏님도 욕한다 했다. 

그 서슬퍼렀던 왕조시대에도 임금님의 욕을 했는데 하물며 요즘처럼 자유로운 시대에야 하지만 가능하면 하지 말아야 할 욕이 있다.

첫째가 남의 가족사에 관한 일이고, 둘째가 부부에 관한 일이며, 세째는 남의 연애사에 대한 일이다.

자신이 당사자의 입장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에서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라지만,

그 말을 전해 듣는 입장에서는 얼토당토 황당무계한 터무니 없는 말일 수 있다.

소문이란 1%의 진실과 99%의 거짓이 진실인양 부풀려 져서 퍼지게 마련이다.

잘못된 소문이 결국 멀쩡한 부부관계를 틀어지게 하여 결국 파경에 이르게 할 수도 있기에,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고 말을 골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란, 그러한 소문을 들으면 입이 근질거려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기에, 다른 친구에게 '비밀'이란 전제로 말하게 되는 순간, 결국 한 입 두 입을 건너 뜬소문이 된다.

위에서 말한 세가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자세한 속사정을 알 수가 없다.

때문에 친구가 조언을 구하지 않는 한 가능하면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남의 가족간, 부부간의 불화나 다툼은 어느 한사람의 말만 들어서 알 수 없다.

첫째로 가족 간의 불화의 원인은 대부분 재산 문제와 부모의 부양에 관한 문제, 형제간 금전거래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는 이러한 것들은 미풍에 그치지만,

결혼을 하며는 세대가 구성되고 딸린 식구들의 의식주와 교육및 양육에 관한 독자적인 경제권역이 필요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세대의 문제로, 이해 관계가 형성되어 단지 순수한 형제 자매로서가 아니라  형제자매 가족간의 다툼으로 비화될 수 있다.

나의 힘으로 번 돈이라 하여도, 그 쓰임은 나의 가족 공동의 생활이 기본 바탕이기에, 부부가 함께 의논하여 쓰임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피로 맺어진 형제 자매란 전제가 의식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어, 같은 형제인데 그런걸로 뭘 그리 따지냐?"고 섭섭해 하다보니 준 사람은 준 사람대로, 받은 사람은 받은사람 대로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의견이 갈라지고 다툴 수밖에 없다.

혼자라면 내 부모 내 형제인데 무엇인들 못 주겠는가?

하지만 부모가 되면은 내리사랑이기에 가까이 있는 아내나 자식에게 먼저 손이 가기 마련이다.

자신도 자식의 학비나 자신의 더 나은 생활과 영달을 위해 돈을 쓰면서, 다른 형제에게는 자신을 돕지 않는다고, 부모의 용돈이나 부양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옳지 못하다.

형제 중 그래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 부모를 부양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것이 대부분이다.

형제 중에도 부모가 마음이 편해하는 자식이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아들이 당신에게 잘 해 주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다른 아들은 말도 잘 안하고 그럭저럭 당신을 대해줘도 마음이 편한 곳이 있게 마련이다.

즉 마음에 드는 아들보다는 며느리가 마음에 드는 아들집을 원하게 된다.

부모에 대한 부양은 아들이 아무리 모시려고 해도 현실에서 모시는 사람은 며느리가 될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굴곡이 많아 다른 자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있는 돈 없는 돈 구해서 지원을 해 줬는데도, 끝내 헤어나오지 못해 형제 간의 불화의 원인이 되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부양의 문제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부모는 자식들이 성가하여 따로 살림을 차리게 되면, 한 자식에게 다른 형제의 동의 없이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 두번은 도리상 한다 해도 혼자 일어설 수 있도록 해야지 다 큰 자식을 부모의 사랑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스스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갖을 수 있도록 때로는 사랑보다 매가 더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나이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부모의 사랑이 필요치 않은 자식은 하나도 없다.

어릴 때는 부모의 사랑이 많고 적음을 가릴 수 없지만 나이가 들면 이러한 것이 무척이나 가슴에 아픔이 될 때가 많다.

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러한 것들이 상충되는 것이 바로 가족사이다. 

가족일수록 받은 것에 대해 더많이 감사해야 하는 노력을 해야하고, 자신이 준 것은 빌려준 것이 아니라 그냥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둘째로 부부간의 문제와 연애사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관계되는 일이기에 가급적 입에 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부는 대부분 성격차이나 아이들의 교육 문제, 또는 성적 트러블이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고, 이런 성적 트러불이 소위 말하는 '바람'을 피우는 원인이 된다.

연애할 때와 함께 산다는 것은 엄청나게 다르다.

연애할 때는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크기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지만, 결혼은 현실이기에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 구분되고, 연애할 때 보여지지 않던 사생활 속의 모습도 적날하게 드러나 환상으로 부터 벗어나서 오는 갈등이 따라오게 된다.

서로 간에 자신의 해주기 바라는 마음과 주도권 다툼은 당연한 일이고,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자는 일에 치여 남편을 돌 볼 수 있는 여유조차 없게 된다.

멀어지는 아내의 관심과 사랑에 불만을 갖게 되어 자연스럽게 부부싸움이 잦아지게 된다.

또한 아이를 낳고 몸조리하는 기간 중이나 사랑을 나눌 환경이 줄어듬에 따라 성적인 스트레스가 쌓여 충돌도 이어지고, 집에 귀가해도 사랑과 기쁨과 행복과 같은 즐거움 보다는, 점차 아내의 잔소리와 가사를 봐줘야 하는 시간이 늘게 됨에 따라,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싫어지게 되어, 친구의 약속이나 경조사를 핑계로 집에 안들어 가려고 한다.

이럴 때에는 서로 감정을 자극하는 말보다는 갈등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을 해결하는 노력을 함께 하도록 해야 한다.

결혼을 하면 둘만이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 줄 알지만 결혼과 동시에 닥쳐오는 고부간의 갈등, 형제. 시누이와의 갈등, 차려주는 밥상만 바라보다 남을 위해 직접 요리하고 빨래하면서

느끼는 자신에 대한 자조감들은 신혼에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혼율이 결혼 후 3년 사이에 가장 많은 것도 이런 원인에 따른 것이다.

아무리 잘 생긴 사람도 매일매일 보는데 어찌 질리지 않겠는가?

남자는 항상 애인 같은 여자를 찾고 여자는 항상 아버지 같은 남편을 찾는다고 했다.

아마 TV 조선 기상캐스터 황미나 양이 26세로, 14살 차이 나는 코요태 김종민과 연애하는 걸 보면, 아마 아빠같은 자상함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서로 간에 바라는 바가 극명하게 다르다.

바람을 피우는 친구에게 “넌 마누라가 그렇게 잘 해 주는데 왜 그러니?” 하고 물어보지만 부부관계는 정말 알 수가 없다.

오늘 좋다가도 내일 나빠지는 것이 부부관계다.

부부는 무조건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줘야 한다.

이만큼이면 된다는 한계치가 없다.

먼저 져 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 부부싸움이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남의 말을 안하고 살 수 없다.

내가 아는 사람의 나쁜 소문을 들었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소문에 힙쓸려 친구를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친하다는 것은 이러한 나쁜 것도 함께 포용하는 것이다.

내가 남의 얘기를 하듯이, 또 남으로부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령혼™

단상·칼럼·포토에세이·저널리스트 김진철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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