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먼저다



인생의 정답은 바로 자신일 뿐이다



아마 가장 큰 행복은 마음 편한 삶이 아닐까 싶다.

비록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필요할 때 아쉬움이 없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리라.

그러나 필요함은 항상 찾아오는 것이기에, 그 필요함을 충족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것을 찾고 구하기보다는,

차라리 이미 소유하고 있는 다른 것을 대체하거나 마음을 비워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린 너무 내게 필요 없는 것까지 소유하기를 원하니까 말이다.

살다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내가 손해고, 저렇게 하면 가족 같은 지인이 손해라, 손쓰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차라리 과감히 내 버려두고, 시간의 힘에 기대는 것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더러 남들의 눈에는 우유부단하다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그 어려움도 제풀에 지쳐서 사라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세상에 맞서 이길 사람은 없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먼저다.

우선적으로 세상에 맞서려면, 가진 능력이 탁월해야하는데 그런 사람은 세상에 흔하지 않다.

대부분 성공한 사람은 세상에 이겨서가 아니라, 세상의 흐름에 순응한 사람이기 쉽다.

세상에 굽히면 자칫 당당함 잃은 듯싶지만, 품는 것은 세상이지 내가 아니다.

따라서 노력하다 안 되는 것까지 억지로 연연하지는 말아야 한다.

단 한 번의 삶이기에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가능하면 즐거움과 행복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과감하게 배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 이런 삶을 살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지나친 스트레스와 피로가 단잠을 방해하고, 자신에 대한 지나친 비하가 마음의 병이 되듯이, 

행복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기에, 삶이 슬프고 고통스러울수록,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내게 나쁜 건 줄이고, 좋은 건 늘이는 능력의 안배도 중요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조차, 적재적소 상황에 적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채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늘 더 가지지 못해 안달이지만, 소유하고 있는 것 중에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옷장이나 창고를 열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쓰지 않으면 소용없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얼굴이나 모습도 사라지고 이름도 사라지고 기억도 사라진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고통이든 슬픔이든, 아니면 가슴 가득 쌓인 원망과 후회까지도 내가 사라지는 순간 끝이다.

소중한 사람에게는 다소 무책임한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한계는 내가 그 사람들 속에 존재할 때까지다.

그러므로 어쩌면 삶이든 사랑이든 소중함이든, 내가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면 족하다.

때로는 의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삶을 살펴볼 때도 있다.

비록 단편적이지만, 부모의 삶은 물론이고 형제자매나 친구들의 삶까지도 지켜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삶도 결코 나의 삶이 되지는 않는다.

나의 삶과 나의 인생은, 내게 주어진 시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삶이며, 그 삶이 쌓여 나만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사실 삶에 대해 가치를 따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지 모른다.

그것은 옳고 그름이나 행복과 불행 역시도, 어쩌면 결과론적인 것들이지 그 자체가 삶일 수는 없기에 그렇다.

옳다고 그 길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쁘다고 그 길을 외면하고 피해 갈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과 불행, 즐거움과 슬픔, 안식과 고통이 교차되는 인생이라 할 수 없다.

따라서 인생의 정답은 바로 자신일 뿐이다.





소중함의 차이



사람은 각자 바라보는 곳이 다르다.

오랫동안 한 곳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매순간 바라보는 곳이 바뀌기도 한다.

그렇기에 서로 한 곳을 바라볼 때는 같은 길을 가게 되지만, 다른 곳을 바라 볼 때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

때로는 죽음이라는 숙명에 의해 헤어지기도 하지만, 바라보는 곳이 달라도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마다 필요함에 따라 소중함은 달라지는 것이다.

목이 마른 사람에게 절실한 것은 물일 것이며,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이,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옷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혼자인 사람에게는 외로움을 나눌 상대가,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종교가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필요함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나 아닌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결국 소중함은 필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영원불멸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치고 소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음식을 만들어 줘서 소중하고, 행복을 같이 할 수 있어 소중하고, 도움을 나눌 수 있어 소중한 것이다.

소중하기에 신뢰할 수있고, 소중하기에 대가없이 희생할 수있고, 소중하기에 아무런 조건없이 사랑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중함도 서로 공감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소중함은 스스로 그것에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이별도 이별이지만, 자식들도 점차 이런저런 이유로 곁을 떠나기 마련이다.

온갖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챙겨주었던 내 마음의 빈자리는, 떠난 뒤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도 결코 채우지 못한다.

소중함이 익숙함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

익숙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불편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결국 불편하지 않으면 소중함조차 알지 못한다는 반증일지 모른다.

이처럼 우린 늘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잊게 되는 것은 이런 익숙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삶에는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처럼 소중함은 필요에 의한 선택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을 그 어찌 물건처럼 필요에 따라 선택하느냐고 반문할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생활에 당장 소용되지 않으면, 예전에 아무리 큰 도움을 받았을지라도 결코 제1순위는 되지 못한다. 

이처럼 평생의 소중함의 가치와 순간의 소중함의 가치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평생 필요한 사람이 되기란 너무도 어렵고 힘든 일이다.




누군가 곁에 있음으로



어릴 때는 잘 모른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 즐거움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설령 그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을 겪더라도, 그것이 추억으로 변해 행복이 된다는 것을, 때로는 이별이 그리움이 되고, 때로는 잊혀짐으로 새로워진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사람이 소중해지고 그리워짐으로 가을계절처럼 인생도 익어갈 것이다. 

사람은 늘 자신에게 후하다.

그러나 남에게 냉정한 만큼 자신에게도 냉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결론내리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은 모두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 대한 배려나 이해는 바로 나의 입장이 아닌 그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것이다.

정말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한다면 나보다 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아는 사람들이 평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쓰고 거친 말이나 지적에 대해 겸허하게 충고로 여길 수 있는 열린 마음이다.

사람들 모두 자신의 입장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나 견해가 다르기에,

그 평가는 냉정할 수밖에 없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왜냐하면 완벽함은 더 이상 모자란 것이 없기에 발전도 없다.

발전이 없다는 것은 즉 미래에 대한 기대나 희망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흔히들 주변에서 팔방미인이라 듣는 사람조차 새로운 변화가 닥치면 한동안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이처럼 모자라고 부족한 것을 구하고 채우려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아마 사람을 올바로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존재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마치 카멜레온과 같이 주변상황에 따라 변하기에 그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이해한다는 것 역시 어렵다.

하물며 자신의 입장에서 그 어찌 사감이 들어가지 않을까?

옳고 그름보다 이익이나 손해냐가 더 우선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는 함께 하는 한 따지기보다는 무조건일수록 좋다.

함께함은 이미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하기에 끊임없이 믿고 이해하며 사랑함이 옳다.

내 입장에 치우치면 모두가 손해로만 보일 뿐, 내 입장을 버려야 남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한 순간도 내 곁의 그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무엇인가 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미래가 아니다



모든 계획의 늘 자신이 기준이다.

하지만 그것은 혼자였을 때이지 가족이 생겼을 때는 아니다.

비록 나로 출발했더라도 나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너무 자신 입장만 내세워 가족 간의 화합을 헤치고 우격다짐으로 밀어 붙이기 보다는, 가족과 주변이 함께할 수 있는 계획이라야 인생의 목표인 행복에 더 근접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래란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성공한 것은 물론이고 실패한 것도 포함하고 있다.

즉,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게 될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계획이란 바로 미리 미래를 예측하여 구체적으로 실천하겠다는 행동양식임과 동시에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확히 예측하고 주도면밀하게 계획해도 변화막측한 것이 미래이기에 계획대로 이뤄지기란 쉽지 않다.

흔히들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을 운명이라 한다.

그러나 그 운명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이이라는 세월이 가진 힘이다.

당장에는 여러 조건들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도, 시간이 지나 그 조건들이 충족되면 이룰 수도 있기에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은 시간이 더해질수록 새로운 경험과 생각과 방법이 생겨남으로 인해 운명과 맞설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운명이란 노력부족 탓이지 탄생과 죽음이외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미래에 대해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그저 과거나 현실에 비추어 짐작할 뿐이다.

그렇기에 미래에 대한 계획이 아무리 완벽해도 막상 미래가 현실이 되면 오류가 생기기 마련이다.

마치 인터넷으로 세계 유명관광지에 대해 알고 가도 막상 찾아가면 헛갈리는 것처럼 말이다.

학교에서의 1등이 사회에서의 1등이 되지 못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와 오래 사귀면 그 사람만의 이미지가 쌓이는데, 우린 대부분 그것에 벗어나면 잘못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저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저 사람이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그동안의 삶을 통해 굳어진 습관이나 가치관을 고치기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미래라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습관이나 가치관을 허물고 깨부수는 용기와 신념이 필요하다.

정저지와(井底之蛙)란 말이 있다.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자신만의 눈으로 보는 미래는 자칫 반쪽일 수 있다.

세상 모두를 보고 경험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꿈과 의지가 가리키는 길이라면 더 많이 경험하려 노력해야 한다.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가려하지 않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지 않는다.

어쩌면 책이나 인터넷으로 보면 더 폭넓고 깊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직접 몸으로 경험하지 않으면 마음에 기억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획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세우는 것이 옳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너무 장기적인 계획으로 시간과 돈과 힘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자신의 삶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미래가 아닌 바로 현재이기에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미래가 있는 것이다.

너무 과거에도 미래에도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현재는 곧 미래의 바탕인 것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사람은 자신의 그릇의 크기 안에 살아야 한다.

계획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그렇다.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입기에도 편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계획 역시 그릇의 크기에 맞춰야 한다.

책임질 능력도 안 되면서 무조건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높게 살려 해서는 안 된다.

그릇의 크기에 맞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절대적인 것은 자신의 마음에 있다



누구나 부자로 살고 싶지 가난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누구나 주변에서 알아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그저 있으나마나 한 사람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이처럼 사람이 원하고 바라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사는 것에 이유를 대지 말라.

사람은 살면서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그것은 바로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 분에 넘치거나 지나친 욕심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릇이 부실하면 무엇을 담아도 걱정스러운 것처럼, 사람이 할 일은 주어진 삶을 그저 열심히 살면 족하다.

사는 것은 다 힘들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면서 순간순간 힘든 것조차 참지 못해서는 곤란하다.

온 힘과 오 정성을 다해도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많이 힘들어야 얻는 것도 많은 법이다.

지금 나는 욕심을 버린 것이 아니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난 예전보다 내 삶을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다.

젊은 시절처럼 헛된 욕망에 휘둘리거나, 헛된 사람과 만나 헛된 돈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보다 행복하거나 즐겁지는 않다.

사람을 알려면 마음을 알아야 한다.

아내나 자식과 같은 가족의 마음을 아는 법과, 친구나 동료의 마음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음을 안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는 것은 바로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시대가 시대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새로운 방식이 고안되고 새로운 문명이 들어와 내가 알거나 습득한 것들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는 평생 익히고 배워야하는데 그것이 어디 쉬운가?

사람의 몸과 마음은 휴식은 휴식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윗사람의 위치에 서게 된다.

아버지가 되고, 선배가 되고, 상사가 되고, 조금씩 더해진 짐을 지고 늙어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은혜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원망으로, 그렇게 기억 속에서 살다 서서히 잊혀져 가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는 것에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말고 지금 하는 일을 즐겨라.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오래 하면 질리기 마련이고,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돈이 되면 안 할 이유가 없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처럼 매사를 긍정적으로 대하라.

다만 일에 치이거나 매이지는 않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할 때는 가장 쉬운 것부터 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마찬가지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도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사는 것에 이유를 찾으면 가치를 따지게 되고, 가치를 따지게 되면 다른 것과 비교하게 된다.

절대적인 것은 모두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삶은 인생이란 그릇에 담기는 음식물과 같다.

물질로의 그릇은 모양이나 색깔 그리고 크기가 고정이지만,

인생이란 그릇은 그릇에 담기는 음식물의 내용에 따라 그릇의 크기나 모양 그리고 색깔이 다르다.

그것은 삶의 경험을 통한 자아의 성숙과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그릇에 담겨지는 음식물의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아의 변화는 늘 새로운 삶에 대한 의문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문을 질문할 때는,

본인은 정확하지는 않아도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을 때가 많다.

정말로 몰라서 질문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의 해답에 대한 확인을 받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단순히 먹고 살다면 모를까 타인의 삶과 비교하기에,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삶의 해답 역시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일에는 아무리 골몰해도 해답을 찾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굳이 해답을 찾으려 애쓰지 말라.

그것은 지금은 해답을 찾을 시기나 경험이 충분히 숙성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해답이라고 해서 모두가 정답일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다만 어려움을 이기려는 용기와 의지는 잃지 말아야 한다.

삶의 해답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속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좋은 답을 제시해도,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으면 그것은 결코 나의 해답이 아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면 삶에 그 무슨 어려움이 있을 것이며 충고나 조언을 해 줄 멘토가 필요하겠는가?

요즘은 모두 돈돈해서인지 무슨 일이나 돈을 해답으로 여긴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돈에 얽매여 산다.

삶의 해답은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

또한 무슨 가치관이나 좌우명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살면서 생기는 이런저런 의문이나 어려움에 대처하는 나의 마음가짐이며 삶을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상 해답을 구하고도 그 해답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정답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삶의 해답 역시 자신의 능력 범위에 속해야 한다.

삶은 곧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내가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나 일을 회피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하나하나 열심히 해 나갈수록 내 삶은 더욱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어떤 일이든 남의 일이라 생각하면 그 일이 힘들게 느껴져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이기에 내 일이란 생각해야 한다.

결국 삶의 해답 찾기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정으로 하는 부탁은 거절하기 어렵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어려운 일 한두 번은 겪기 마련이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이겨낼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처한 사정에 따라 혼자서는 도저히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도 더러 있다.

예를 들어 돈도 돈이지만 사람이 필요한 경조사일 경우 일가친척은 물론 친구나 지인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렇기에 평소에 지인들의 작은 일에도 관심을 기울려야 한다.

이처럼 친한 사이라도 자격이 있어야 한다.

친구로서 동료로서 그 이름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평소 주변에 많은 사람을 알고 있어도 막상 어려운 일이 닥치면 도움을 청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치지 전까지 그 일이 마치 남의 일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움이 닥쳐야 후회하지만 그 때는 이미 때가 늦다.

누구나 세월을 이길 사람은 없다.

산이 좋아 산에 가고 싶어도 관절이 아파 가지 못하고, 보고 싶거나 조금 여유로워서 술이라도 한잔 하려고 해도 건강 때문에 거절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여행을 함께 하고 싶어도 취향이 달라 같은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처럼, 같은 환경이나 조건을 가진 친구를 가지기란 정말 힘들고 어렵다.

알다시피 정(情)은 오랫동안 함께 지내 오면서 생기는 친근한 마음이다.

즉, 정은 시간이 더해지고 함께 했던 추억이 쌓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음의 흐름인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 원망보다는 그리움의 대상이며, 함께 하지 못함이 오히려 안타까움이 되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의 부탁을 그 어찌 냉정하게 거절할 수 있을까?

거절은 곧 자기 마음에 대한 부정일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모든 일을 알 수 있다 했다.

진실한 마음은 편하고 아름다우며, 거짓된 마음은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추해 보인다.

내가 정을 준 사람은 언제나 내게만은 진실할 것이라 믿고 싶은 마음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뻔히 눈에 보이는 거짓말이나 손해라도 정이 내민 그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고 붙잡게 되는 것 같다.

이렇듯 정은 한번 빠지면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악마의 유혹인지도 모른다.

도움을 주면서 나중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도움은 위급한 상황에서 청하는 것이지, 여유가 있으면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이나 형제, 그리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하는 부탁이라면 가능하면 들어주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정으로 하는 이런 부탁을 할 사람조차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간다.

도움을 주는 것도 다 때가 있어 그 기회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부탁이나 요구도 기분 좋게 해야 한다




새삼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변 사람들의 <세상이나 사람을 대하는 자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서로에 대한 배려는 기본이었는데, 근래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것 같다.

그리고 예전이면 스스로 옳지 않은 행동을 삼갔는데, 요즘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대하려고 한다.

의견이나 부탁이 아닌 들어주지 않으면 무슨 행동이든 서슴지 않겠다는 강요나 협박도 예사다.

너무 경쟁에 치우쳐 삶이 살벌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먼저 세상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겠다는 것은 없고,

오로지 세상이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기만 바라는 거의 일방적인 요구와 희생만을 강요하려 드는 것이다.

그렇게 저마다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 더러 사정을 들어주고 싶어도 도저히 들어 줄 수 없을 정도다.

공연히 들어줘 불란(不亂)을 일으키기보다는, 처음부터 안 들어주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만큼의 책임도 뒤따른다.>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자리에 앉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없이 그저 좋고 편한 자리만 앉으려한다.

자리에 앉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에 어울릴 만한 자격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함을 쉽게 간과하는 것이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라는 격언처럼, 윗사람에 대해 욕이나 비난만 일삼는 것이다.

물론 윗사람이라고 다 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이용해서 얻을 건 다 얻고 더 안준다고 비난해서는 곤란하다.

세상이란 질서와 공존을 전제로, 서로 나누고 또 보태면서 살아야지,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요구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을 사라고 돈을 줬더니, 감사는 커녕 왜 그것을 직접 사다 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꼴이다.

상대방에게 요구하기 이전에 요구할 자격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

요즘 사람들은 열심히 해서 얻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부족하다.

물론 노력만으로 얻을 수 없는 작금의 사회현실을 감안하더라도 매사에 급해 기다리지 못한다.

소위 눈치가 있는 윗사람이라면 아랫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모르겠는가?

아랫사람은 아랫사람대로 윗사람은 윗사람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때 동등해지는 것이다.

자리에 어울리는 임무와 책임은 나 몰라라 하고 부탁이나 요구만 나열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바라는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나의 시간이나 노력을 줘야 한다.

높고 좋은 자리는 오랜 시간 그 분야에서 수많은 시간동안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런 사람에게 단지 윗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보다 더 위에 있으니 들어줘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먼저다



“먼 나라와는 사귀고 가까운 나라는 친다.>라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이 말은,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책사였던 범수라는 사람이, 진나라의 소왕에게 진언했던 말이다.

물론 이것은 전국시대의 군사전략이지만, 현재 우리의 일상 중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모습이다.

그러나 요즘은 가까운 사람의 도움을 통해 멀리 있는 사람까지 친해지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나를 도와줄 사람만큼 소중한 존재도 없기 때문이다.

서로서로 위하는 마음이야 부모나 자식 모두가 같겠지만, 늘 보던 사람보다 자주 못 보던 사람이 반가운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막상 급하게 아프거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 도와줄 사람은 함께 사는 자식일 수밖에 없다.

함께하는 사람은 그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야 하고, 아픈 일이 있으면 약을 지어오거나 병원에도 모시고 가야 한다.

아무리 내 일이 바빠도, 때로는 몸도 돈도 시간도 우선적으로 써야하는 자식으로써의 도리와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나를 위해 그렇게 어느 누구보다 먼서 나서서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사람을 먼저 배려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함께 살아주는 자식이 진정 효도하는 자식이라는 말처럼, 지금 당신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 

직장이나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다.

지금 자신의 위치나 자리에서 보면 모두가 불만족스럽다.

왜냐하면 비교는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보다, 좀더 나은 사람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비교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현 상황을 불만족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대부분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에게서 일어나기 쉽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입장이나 처지를 헤아리고, 자식은 부모의 마음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상사와 부하라는 직급이나 직책보다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료라 생각해야 한다.

<부모가 되고 나니 부모의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우리가 평소 늘 말처럼,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먼저다.

많이 부딪쳐야 정도 들지만 그만큼 다투는 일도 빈번하다.

따라서 서로에 대해 잘 아는 만큼 이용하기에도 용이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친할 때는 한없이 좋지만 반대로 적이 될 때는 그만큼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늘 부닥쳐 싸우고 큰소리가 날지라도 마음에 담아 두기보다는, 그것이 바로 친해지는 우리들의 몸짓이라 믿어야 한다.

한비자의 <외저설 좌상>편에는 부협상위즉책망 자위즉사행(夫狹相爲則責望 自爲則事行)이란 구절이 나온다.

그 뜻은 “사람은 타인을 위해 애쓴다 생각하고 일하면 어느 순간 상대를 원망하거나 책망하게 되지만, 자기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일하면 일이 순조롭다.”라는 말이다.

이미 일을 하고 있으면서 남을 책망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나라 속담에 <처삼촌 묘 벌초 하듯이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일은 능률도 오르지 않고 왠지 하기도 싫어지고 재미도 없다.

그리고 힘이 들면 들수록 인내와 끈기로 어떻게든 이겨내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남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노력하면 할 수 있음에도 남을 책망하게 되는 것이다.

일의 시작도 끝도 나의 노력에 달려 있다.

살면서 내 일과 남의 일은 명확하게 구분 짓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마치 남의 일처럼 보이는데 때로는 그 일이 나의 삶과 연관되어 영향을 미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삶과 연관 지어 진 모든 일들이 어쩌면 바로 내 일이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동료라는 이름의 인연으로 맺어진 모든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공동운명체인 것이다.

흔히 사람은 자기 일보다 남의 일을 더 잘 본다.

자신의 일은 늘 냉정하고 딱 부러지게 해결하지 못하면서 남의 일은 똑 소리 나게 해결한다.

그래서 자신의 일일수록 관대하고 자기합리화로 어영부영 넘기려는 경향이 있음으로, 제삼자의 눈으로 문제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타인이 나의 거울임을 명심해야 한다.

“재능이 있어서 하는 일보다 좋아서하는 일이 더 낫고, 좋아서하는 일보다 즐겨서 하는 일이 더 낫다.”는 공자님 말씀처럼, 일 그 자체를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즐겨야 한다.

일도 급하게 할 일이 있고 여유 있게 할 일이 있음으로 일의 성격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피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움직여야 일이 힘이 덜 든다.

남에게 맡기기보다는 스스로 그 일의 결과를 보려고 노력하라.

같은 일이라도 단체로 하는 것보다 개인 할당을 주면 더 빨리 일이 끝나고,

물건이나 재산처럼 공동소유보다 개인소유일 때 그 수명이 오래가듯이, 스스로 하려는 마음이 우선이다.

부모가 자식의 양육을 아무리 잘해도 커서 원망을 듣게 되고, 자식이 아무리 무모에게 효도해도 부모는 모자라게 느끼는 것처럼, 모두들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바라본다.

남의 입장을 아는 것이 바로 대화의 시작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도 나란 존재가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므로 내 일 남 일 따지기보다는 그 일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남을 책망할수록 일에 대한 자신의 의지는 점점 사라지고 피하려는 마음만 더 자랄 뿐이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일에 대한 결과는 오롯이 나의 책임이라는 각오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라.

너무나 아끼고 소중해서 일어나는 우리들의 행복이라 믿었으면 좋겠다.



령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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