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많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휘둘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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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은 없다



인간의 역사는 소수의 용기 있는 도전자에 의해 발전해 왔다.

역사는 승리자의 관점에서 평가되고 기록되는 것은 필연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도 인간의 욕망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스스로 좌절하고 주저앉지 않을 용기와 인내심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결코 불가능은 없다.

인간은 가장 큰 장점은 지식과 사상들이 대물림할 수 있는 교육일 것이다.

이렇게 교육을 통해 대물림되어 전승된 지식은 새로운 사고와 도전을 낳게 됨은 당연할 것이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는 도전이지만 욕망과 다름없을 것이다.

개개인으로 따지면 포기하는 사람도 생겨나겠지만 인간의 욕망은 불가능이 없다.

그래서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을 짓다 하나님의 노여움을 불러왔지만, 시간과 열정만 있다면 언제든지 가능할 것이다.

당대에 이루지 못하면 대대로 숙명처럼 그 짐을 지고 도전을 이어 간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개성이란 사람마다 특징이 있기에 능력 역시도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어떤 사물을 보고 느끼는 것이라든가, 문제 해결에 있어 다양한 생각과 해법이 가능하다.

때문에 분야마다 특출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할 것이고, 이런 능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사회적 혁신을 가져온다.

작은 웅덩이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듯이, 이런 창조적 사고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모순(矛盾)이란 말이 있다.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모순(矛盾)이란 말은 두 개의 명제가 똑같이 참이 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현대는 이러한 모순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세상이다.

가상 속의 세상이 현실에서도 가능한 것이 바로 과학이요, 인간의 욕망이다.

사실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수많은 지식이 돈벌이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살면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는 그 시절에 배웠던 지식과 경험이 실마리가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 얻어야 할 것은 신념이며, 신념을 관철될 수 있는 의지일 것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용기이지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무너지지 않는 의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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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등한 인간관계는 없다




사람 사이에는 대등한 인간관계란 없다.

그동안 서로 친하게 관계를 유지해 왔으므로 서로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만일 스스로 대등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철부지 생각일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내가 주는 것은 크고 남이 주는 것은 작다란 인식이 밑바탕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인식은 항상 내가 준 것보다 받은 것이 적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친구나 가족이 어려운 일에 닥치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웃긴 얘기지만, 돈 문제만큼은 어떤 면에서는 모든 것 초월하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한두 번은 그간의 정 때문에 도와주게 된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되고 도움에 대한 반대급부를 받지 못할 상황에 놓이면 선뜩 마음이 끌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자기가 믿고 의지했던 친구란 존재와 사람의 정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비근한 예는 상가 집에 가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죽어 문상 온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의 생전의 삶에 대해 평가를 하곤 하지만, 그 역시 중요한 것은 아닐 게다.

잘 사는 집에서 상(喪)이 나면 조화가 문밖까지 넘쳐나고 손님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반대로 가난한 집의 상(喪)은 한산할 정도로 사람이 없는 것이 세상인심이란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일 것이다 .

우리는 친구나 형제자매나 동료는 늘 대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어느 정도 서로를 인정하고 관계를 유지하지만 돈 문제만 생기면 얼굴을 붉히게 된다.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으로 균등하게 나누어 부과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정말 돈이 없어서 내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면 돈이 없어서 내지 못하는 사람은 자존심으로 상처를 입고, 돈을 내기 싫은 사람은, 이를 핑계로 삼아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실리를 탐하게 된다.

이처럼 주변 환경이 엇비슷하여 대등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것 같지만,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없듯이, 생활의 차이에서 오는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 지난(至難)한 일이다.

서로 처지가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등을 기대며 산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에 있어서 똑같은 존재로 대등한 삶을 대접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서로서로 조금씩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누고 양보하고 살아야, 최소한 스스로만큼은 따뜻한 정을 느끼고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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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信念)



신념은 어디에서 생겨날까?

아마 신념은 막연한 상상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가 하고 싶다든가 원하는 꿈과 같은 상상의 것들을 실체화 한 것 그것이 바로 신념일 것이다.

일종의 삶의 의미고 목표일 것이며, 꿈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꿈이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빗방울과 같다.

점과 같은 이 빗방울들이 하나의 실천 의지를 가질 때 비로소 신념이 되는 것이다.

신념은 돋보기와 같다.

빛을 모아 한 점에 모으면 종이나 나무가 타 들어가는 것과 같이 끝없는 집중이다.

한없는 집중은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잠재의식을 끌어와 초인과 같은 힘을 발휘하게 한다.

이처럼 막연한 상상력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이 흔들리지 않도록 의지를 부여하여 관철하는 것이 바로 신념이다.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은 내가 인정하는 길이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은 성장한다.

아이가 소년이 되고, 소년이 청년이 되며, 청년은 어른이 되고, 그리 오래지 않아 노인이 된다.

이렇게 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억지로 누가 거들지 않아도 자라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모가 바라보는 접점에 따라 자연스러운 성장보다는, 인위적인 것들이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하늘의 별무리처럼, 수많은 것들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각축하는 장이다.

이처럼 대 자연속의 동식물은 경쟁에서 낙오되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경쟁에 지고도 도태되지 않고 사랑이라는 정을 자양분 삼아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뿐일 것이다.

조금은 비인간적이고 각박할 지도 모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도태가 더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평생 동안 벽을 바라보고 사는 것 마치 고문을 받는 죄인의 삶인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사냐?>고 누군가 물으면 딱히 대답할 말도 없지만, 한계라는 것은 말처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용기를 갖고 도전하지만, 이로 인해 겪어야하는 상처가 깊어질수록 자신도 모르게 움츠려들고 비켜서게 된다.

그래서 자기 합리화나 변명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쉽게 뚫고 지나갈 수 있다면 어찌 벽이라 하겠는가?

그럼에도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벽일지라도 반드시 뚫고 지나가야 바른 길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알다시피 인생에 있어 정답이 어디 있는가?

자신의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지 못하듯, 부모나 선배들이 걸어간 길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아닐 것이다.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은 바로 내가 인정하는 길이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확고히 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시련을 감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막힌 벽이 있으면 물이 흘러가듯이 돌도 돌아 흘러가면 그뿐일 것이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찌 그것이 인생이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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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많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휘둘리기 마련이다



부모에게 휘둘리고, 친구에게 휘둘리고, 동료에게 휘둘리고, 심지어 아내나 자식에게도 휘둘리며 산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단호하게 매진해야 하는데, 늘 작은 정에 휘둘리게 된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조차 힘겨운데, 그 걸음마다엔 자신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처럼 정은 사람 사이를 좁혀주는 가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엇인가를 이루는 데에는 방해요소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처음의 그저 작은 소망 하나가 몸이 커지고 마음이 자라면서 점차 소망이라기보다는 욕망만 많아진 느낌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이룰 수 없는 욕망이 왜 이리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내가 소유한 것들은 노력의 대가로 얻어진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우연히 얻어진 것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그저 삶의 무게에 짓눌러 살다가 내 몸에서 자란 필요의 결과물일 수도 있음이다.

그래서 점차 이러한 것들이 나의 꿈을 정체시키고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난 그저 무엇인가를 탐하기만 했지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싶다.

그저 계획한 목표를 향해 뛰어가다 지치면 이런저런 핑계로 주저앉아 남의 탓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작은 목표이지만 성공이란 기억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단 한 번의 성공의 기억일지라도 그 기억은 언제나 새로운 꿈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작은 목표에 대한 성공이 하나 둘 차곡차곡 쌓여 자신이 원하는 큰 꿈을 이룰 수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정답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삶이기에 더더욱 스스로 마음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돈이 있고 명예를 누리고 살아도, 정작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과 함께하지 못하거나 지킬 수 없다면,

그건 자신의 삶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오히려 정에 휘둘려 힘들게 살아도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면 바로 옳은 자신의 삶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으로 인해 스스로 번민하고 괴로워한다면 그 삶 역시 사람 속에 속해있으면서도 늘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우린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소망대로 살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무엇을 이룬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다른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대가로 얻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린 시절의 그 순수하고 아름답던 동심을 잃어버려야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이 많아 누군가에게 휘둘리고 살아도 그 삶이 힘든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정 때문에 마음을 나눌 소중한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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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유리잔과 같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유리잔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쉽게 상처받는 나의 마음이 그렇다.

딱히 무슨 마음 아픈 일도 없었는데 살아가는 일, 지금 내가 하는 일 모두가 즐겁지 않다.

이 나이가 되면 그래도 자신에게 닥치는 일은 초연하는데 난 아직도 철이 덜 들었나 보다.

물론 그동안 가슴에 남아 있었던 것들이겠지만 그냥 지나쳐도 좋을 작은 것들이 가슴에 남아 안식을 깨뜨려 버렸다.

자신이 무엇을 원했으면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원한 것을 하기로 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불평불만을 가급적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일인데, 힘들고 짜증날 때마다 제3자에게 불만을 표시하면 제3자 역시 짜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제3자는 제3자일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이 제3자의 마음까지 헤아리지는 않기에, 마음은 유리잔처럼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지기 마련이다.

언제부터인가 몸이 어디 아픈 곳이 있어도 홀로 견디고 산다.

누구를 위하여 일하는 것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욕심을 줄이면 많은 부분을 절약할 수 있음에도 모자란 부분은 자신의 몫으로 채우려고 하는 사람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살지는 못하지만, 내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힘과 노력이 덜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채울 것이 많으면 그릇 역시 점점 더 커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번 깨진 유리잔은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돌아오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는 그냥 아물지 않는다.

그리고 상처 난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히기 쉽다.

이미 상처 난 마음은 절름발이가 되어버렸기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두가 마음에 차지 않게 된다.

그래서 별 것 아닌 일에도 버럭 화를 내거나, 마음의 문을 선뜻 열지 못하고 늘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깨진 유리 조각처럼 그 누군가의 파편으로 말이다.

후회는 남길수록 쌓여간다.

사람이라면 후회를 하지 않고 살 수 없다.

다만 가능하다면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후회를 가급적이면 외면하고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후회는 그냥 외면하고 넘기면 넘길수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후회하는 일이 생기는 것을 아예 만들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남길 후회라면 생길 때 해결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물론 쉽게 해결할 수 있다면 애당초 후회할 일도 없겠지만 어떤 식이든 스스로는 정리해둬야 한다.

가급적이면 후회는 자신보다 대승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스스로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또 언젠가는 그 문제로 후회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함께하고 자신을 아껴줬던 이들과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좋고, 그렇게 정리해뒀으면 과감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아마 살면서 가장 많은 후회를 남기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일 게다.

일이나 배움은 어쨌든 자신의 선택의 결과이므로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자신이 원인일 때도 있지만, 상대방이 원인이 되어 그만큼 어쩔 수 없는 상화에 놓일 때가 많다.

특히 젊었을 때는 대부분 믿음이 전제되어 인간관계가 이루어지지만, 성인이 되면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저 사람이 나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느냐.>가 전제되는 경우가 많다.

어릴 적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현실에서 함께 어울려 도움을 주고받을 사이가 되지 못하면 그저 아는 사람일 뿐이다.

뭐 이렇게 말을 하면 너무 냉정하다 하겠지만 친한 사람의 배신이 더 크고 상처가 더 아프다는 사실이다.

흔히 우린 항상 만나는 친구나 동료에게 마음을 터놓고 비밀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는 화가 나도 절제가 가능하나 술자리와 같은 곳에서 분위기를 타면 자신도 모르게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

하지만 한번 털어놓은 비밀은 대부분 지켜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분명 믿고 이것저것 편안히 나눈 말들이 자신을 찌르는 비수가 되어 돌아올 때의 그 착잡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내 편>이라고 믿은 사람이 오히려 적이 되는 경우는 그 후회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의 인간관계는 젊은 시절보다 깊지 못하다.

어쩌면 지인들이라 해도 서로를 이용하려는 아귀다툼이 빈번히 벌어지는 삶의 현장일 뿐이다.

때로는 <이편>이 되었다 때로는 <저편>이 되어 싸우고 타협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이 싫어 마주 서지 못하고 피하기를 반복하게 되면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가 되어 남겨지게 된다.

혼자 남겨져 외로워지고 슬퍼하고 고독하게 되는 것은 바로 세상이 나에게 남긴 상처일 뿐이다.

이처럼 후회는 넘길수록 쌓여가기에 삶에 의지가 남아있는 한 자신 나름대로 정리해 두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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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만물은 생명에 얽매여 산다



그런 걸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유한한 생명을 갖고 있어서 악(惡)한 행동을 한다고.

유한한 삶을 갖고 있기에 더 처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 하루살이나 사람이나 십장생이 삶이 모두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어떨까?

수천 년을 사는 해나 돌의 삶의 과정이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의 삶 속에 응축되어 있다면 어찌 대충대충 살 수 있겠는가?

유한한 시간 속에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과 고통이 뒤섞여 돌아갈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지만, 중요한 것은 처음과 시작은 생명을 가진 만물은 같다는 사실이다.

즉 탄생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같다는 뜻이다.

때문에 하루살이나 사람은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삶 속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품고 있음은 같다.

그래서 십장생의 삶은 아마 주어진 시간을 그만큼 늘려서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문에 기쁨을 느끼는 시간이 많은 만큼 슬픔의 시간 역시 그만큼 길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할 것이다.

이처럼 세상 만물은 생명에 얽매인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자유나 희로애락의 한계는 생명의 범위 안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이 세상에 속한 단 하나뿐인 유일한 생명이기에 항상 자긍심을 갖고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내 스스로 나를 사랑하고 아끼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길 원해서는 안 된다.

생명에 가치를 더하는 것은 바로 스스로를 아름답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위대한 발명가나 과학자와 같이 생명에 가치를 더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탓하기보다는 매일 조금씩 생명에게 의미가 더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정은 숲길과 같다.

왜냐하면, 아무리 친한 마음의 친구라 하더라도 오래도록 서로 왕래하지 않으면, 인적이 끊어지면 금방 숲으로 변하는 숲길처럼 황패해지기 쉽다.

그러므로 우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냥 서로가 알고 지내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자주 왕래하면서 마음을 나누어야 진정한 우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건, 남이 하기 싫어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진정한 친구란 이렇게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거나 어려운 일에 나서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란 말들을 우린 많이 하지만, 실상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양약은 입에 쓰나 몸에는 좋다.”란 말처럼, 자신의 잘못을 집어주는 친구는 때에 따라서는 야속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단점을 몰랐을 때는 충고일 수 있지만, 알고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상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금에 있어 진정한 친구는 충고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그냥 지켜 봐주고 끊임없이 응원해주는 친구일 것이다.

어떤 때는 충고가 오히려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이 될 경우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숲길처럼 변화무쌍한 것이 우정이다.

그러므로 우정도 믿음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단지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불과할 뿐이다.





iPhone 7 Plus | Normal program | Pattern | 1/60sec | F/2.8 | -2.00 EV | 6.6mm | ISO-100 | Off Compulsory | 2018:12:28 20:58:25사진, 성북마을극장 연극배우, 김미란 外 5명



내가 걸어간 걸음걸이만큼이 나의 인생이다




자유와 행복은 노력한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음은 당연하다.

노력하고 있는 자가 아니라 노력의 결과를 완성한 자라야 자유의 소중함과 행복r의 가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이 매일 걸어가는 걸음걸이는 행복의 척도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걸어간 걸음걸이만큼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요 삶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땅을 밟고 살아가는 존재이며, 그 땅을 걸어가는 행위가 바로 삶이다.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걸을 수는 없지 않은가? 때문에 당장에는 그저 필요한 만큼만,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면 되는 것이다.

욕심을 내서 무리하면 그로 인한 탈도 더 심한 법이니까 말이다.

마음이 어떻고, 생각이 어떻고 하는 따위를 따지면서 걸어가서는 자신의 인생 역시 늘 그 자리에 머물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스스로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스스로 걸어간 길이 바로 자신의 경험이요 새로운 현실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이 원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이성의 친구에 대한 사랑이 그렇고, 입에 맞는 음식이 그렇고, 예쁜 디자인의 옷이 그렇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고픈 곳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 검색 창에서 찾을 수 있지만 아마 감동이란 그 느낌을 간직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수많은 행동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걸음걸이다.

자신이 걸어간 걸음걸이만큼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다.

그러므로 너무 조바심을 내거나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땅을 꾹꾹 눌러서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한다.

한 번 걸어간 길은 다시 걸어갈 수 없다.

발자국을 따라 다시 돌아올 수는 있어도 이미 그것은 과거에 불과하다.

앞 선 사람을 따라가기 위해 뛰어간다고 해서 내가 걸어간 길이 그 사람과 똑같아지지는 않는다.

각자의 몸의 크기에 따라 보폭도 달라지듯이 땅을 딛는 무게 역시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렇듯 우리가 하루하루 걸어가는 길이 바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 소중한 가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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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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