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외면당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Canon EOS 5D Mark III | 1/200sec | F/2.8 | 0.00 EV | 200.0mm | ISO-1250 | Flash fired, compulsory flash mode | 2014:06:02 14:48:28레이싱모델 윤수진


마음의 빛



누구나 살아가면서 마음의 빚 하나쯤은 갖고 살아갈 것이다.

아직 철없던 시절 부모께 불효했던 기억이나, 능력이 부족하여 형제 또는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형편이 되지 않아, 마음속으로 담아 둔 것들이 바로 마음의 빚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빚이란 남에게 갚아야 할 돈이나 외상값을 말한다.

주로 금전적인 측면이 강하나 그 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할 빚은 바로 마음의 빚이다.

누구나 살면서 남의 도움 하나 없이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남의 도움이 일정 부분 함께 하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서로의 소중한 일부를 나누어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항상 남의 도움에 감사하는 마음의 가져야 할 것이다.

금전적인 빚이야 빌린 돈에다 이자를 더하여 갚으면 그만이지만 마음의 빚은 그렇지 않다.

도움의 크기는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의 느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작은 도움일지라도 정말 필요하고 절실할 때 그 가치가 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얼마간의 돈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어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거부하다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슬쩍 다가와 도움을 주는 척 한다면,

그건 도움을 받은 사람도 도움을 준 사람도 찝찝하기 그지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격언에 “돈도 잃고 친구도 잃는다.” 란 말과 다를 바 없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란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부모의 장례식이나 자식들의 결혼식과 같은 집안의 대사에서의 지인들의 도움은 거의 절대적이다.

마음의 빚을 한 번이라도 졌다고 느꼈다면 잊지 말고 두고두고 갚아가야 한다.

도움의 크기만큼 갚았다고 돌아서지 말고, 항상 그 도움을 기억하여 천번만번일지라도 진심으로 다가가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는 이벤트성 도움보다는 진정 필요할 때 곁에서 지켜봐주고 도와줄 수 있도록, 그 사람을 도울 거리가 없는지 항상 관심을 기울려야 한다.

평상시는 있는지 없는지 잘 보이지 않다가 친구가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나 물불 안 가리고 도움을 손길을 내미는 친구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면 흔쾌히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진정한 벗이다.

이러한 지인들의 도움이 바로 마음의 빚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위기는 오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그렇지만 도움을 받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나 몰라라 외면하기 십상이다.

남의 도움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도움을 주는 손길에는 인색하다.

어쩌면 마음의 빚이 있음을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한지도 모른다.

도움을 준 사람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내가 남 보란 듯이 잘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사랑을 말하는 입도 이별을 말하는 입도 하나다.

아름다운 것을 말하는 것도 입이요, 거짓과 탐욕을 말하는 것도 같은 입이다.

그래서 때어놓고 보면 모두가 다른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다.

항상 아름다운 말만 하고 살면 좋겠지만 세상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혼돈되어있는 카오스와 같다.

따라서 일상의 말이더라도 사람에 따라 하는 말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요즈음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가급적이면, 삼가고 산다.

왜냐하면, 내가 말을 하게 되면 왠지 남의 마음에 상처를 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얼굴을 보면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괜히 서로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힐까 봐 그저 참아버린다.

사랑만 하고 살아도 부족할 시간인데 왜 구태여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상처의 말을 할까 싶어 그냥 넘겨버리지만, 마음마저 편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고 살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역지사지라고 부족한 것 하나 없을 것 같은 나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렇게 외로움을 느끼는데, 남편을 잃고, 혹은 이별하고 난 뒤 혼자 살아가는 친구들은 어떻게 외로움을 달랠까…

함께 살아가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남과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상처가 되는 말일지라도 대화할 상대가 있지 않은가?

자식들과 같이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는 세상과 자식이 보는 세상은 분명 다르다.

살다보면 혼자서는 하지 못하는 일들이나 자식에게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왜 없을까?

아무리 안 그런 척 하지만 홀로 누워 잠드는 밤은 가슴가득 찬바람만 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답답한 것은 그것을 해결한 방법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

너무 부정적인 시선을 세상을 바라본다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요즈음은 거의 말을 잃고 사는 것 같다.

하루 종일 하는 말이라고는 무엇을 요구하는 말이나 명령, 혹은 지적과 같은 필요에 의한 말들뿐이다.

회사에 나와 일을 하면서도, 집에 머무를 때도 마음이 담긴 말은 거의 없다.

소위 수다라 일컫는, 일상의 말들을 나눌 사람이 없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대화를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하루의 대부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거의 다 필요에 의해, 만난 사람들이기에, 혹여 오해를 줄 수 있는 말이 될까 봐 항상 조심스럽다.

사람의 얼굴이 다른 것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준비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즐거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대화할 친구가 절실한 것은, 같은 세대를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간에 신뢰가 쌓이고, 각자의 과거를 공유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 마음속 고민을 쉽게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상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무엇을 바라지 않고 얘기를 들어줄 수 있음은 커다란 행복이다.

하루하루가 누구에게나 다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는 재미가 있어야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고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미래가 온통 칠흑의 절망이라면 어찌 하루하루의 삶이 고되지 않을까?

언제부터 내게도 이런 기대가 점차 절망으로 변하고 있음을 안다.

내가 딱히 세상에 바라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원한 것뿐인데, 그것조차 점차 이루지 못할 꿈으로 변해버렸다.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시간은 멀기만 한데 가야할 미래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내 딴에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 여겨왔건만 잠시 머물러 되돌아 온 길은 허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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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의 개구리



사람은 다 제멋에 살기 마련이다.

아무리 아픈 고통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습관처럼 익숙하기 마련이다.

고 울고 아파하고 또 사랑하다 헤어지고, 서로 인연으로 얽히고설켜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며 산다.

부모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도 되돌아서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다.

이런 고통의 순간을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그래도 적당히 재미를 동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운명이란 틀에 박힌 삶일지라도, 어느 정도는 착각에 빠져 사는 것도 인생을 즐기는 한 방편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여 늘 경계하면서 살기에 하루도 마음 편하게 살지 못한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지금까지 애써 이루어 놓은 성(城)이 한순간 신기루처럼 살아질 수도 있다.

마음속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곁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가면을 쓰고 산다.

진정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닌데도 좋은 것이 좋다고 그냥 넘기고 살아서인지, 어느새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되돌아서서 후회하고, 혼자 스트레스를 받아 마음 아파한다.

내가 요즘 세상을 통해 항상 느끼는 것은, 그동안 너무 혼자 생각에 치우쳐 안주하고 살았음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얼마만큼 고지식하고, 내가 만든 울 속에 갇혀 살았는지 실감하고 있다.

자신은 싫어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있는데도 외면하고 살았던 것 같다.

“남보다 크게 뒤지지 않게 산다.”란 착각에 빠져 타인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비뚤어진 생각을 지니고 있었는지 알게 된 것 같다.

너그럽지 못하고 독선적인 행동을 내 스스로가 하면서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꼴불견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왜 옛 어른들이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된다. 란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남보다 많은 것을 본다는 것은 바로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이며, 많은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바로 남 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과 같다.

새로운 환경은 바로 변화다.

이러한 변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여 생각과 행동을 가치 있게 변화시켜야 주어진 삶이 지루하지 않다.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마음속에서 스트레스를 만들지 않도록 내 자신의 변화를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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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보면 모두가 그리움이다



흔히들 사람 하기 나름이란 말이 있고,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달라진다고도 한다.

그러나 마음도 마찬가지지만 그 마음을 품은 사람이란 존재도 마치 바람 앞의 갈대와 다를 바 없다.

상대방의 작은 몸짓에도 반응하는 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아는 순간 사랑은 어렵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곧 자신의 모자람을 안다는 것인데,

그 모자람을 알면서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다가서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사랑은 철없었던 어린 시절에나 쉽게 고백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랑이 다가와도 스스로 밀어내고는 슬퍼한다.

어렵더라도 삶에 도망치지는 말자. 

마음에 닿지 않으면 모든 일이 재미없게 느껴진다.

결과를 만드는 것은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지 마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정상에 서는 것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듯이, 삶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불행은 늘 곁에 머물 수밖에 없다.

어려운 일조차 마땅히 내 것 인양 스스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되돌아보면 사람은, 늘 누군가를 원망하고 또 그 누군가를 탓하며 산다.

좋은 일은 늘 내가 잘나서이고 나쁜 일은 늘 남 탓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 내일이지만 그 내일마저 못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마치 습관처럼 당연하게 맞이하는 일과들이 내 삶의 근간임을 잊으면 안 된다. 

삶에 도망치지 말자.

스스로 만족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지만 게으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늦다.

뱁새가 황새걸음하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처럼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면 매사가 불만족스럽다.

진수성찬일지라도 배고프지 않으면 그림에 떡이다.

지나보면 모두가 그리움이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도, 가슴 절절하던 고통의 순간도 지나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막상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그 때의 상흔이 욱신거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성이란 경험치가 쌓이면 그 때처럼 아프지 않다.

사람은 살아가는 매순간마다 소중하다.

지금 이 시간, 멈출 수 없는 기침처럼 세상이 아프다.

 매일매일 흘러가는 시간 속에 홀로 잠들어 버린 나는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랑이라는 것, 가족이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 그것들은 가로등 진 골목길처럼 어둡다.

무엇을 안다는 것, 그것은 차라리 절망이다.

하지만,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은 달콤한 사랑의 밀어도 아니요, 그저 평범한 일상의 희망이다.

아침에 일어나 내게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기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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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어리



언제부터인가 가슴속에 묵직한 돌 하나를 품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어릴 적 가난을 지고 힘겨워 하던 부모의 가슴을 나 역시도 어느 사이엔가 닮아가고 있다.

원하거나 원치 않거나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삶인데 무슨 응어리 맺힐 정도로 한이 쌓일까? 싶었는데,

이렇게 중년의 나이가 되자, 대화를 나누고 싶고, 놀고 싶은 친구도 사라지고, 세상은 결코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동안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그냥 지나쳐 왔던 시간에 대한 소중함과,

그 당시는 능력이 부족하여,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아쉬움으로 고스란히 가슴에 남아 쌓였는지 모른다.

아니면, 혹은 부모나 사랑했던 사람이나 아니면 친구에게 섭섭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때때로 빈 공간에서 멍하니 서 있는 것은, 내가 세상에 바라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살아도 그리 불편한 것이 없음에도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내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 산다.

그렇다고 본디 생겨먹은 것이 그런데...

조금 더 번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거침없이 쓰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겉모습만 흉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부모 걱정, 아이들 걱정,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걱정 등, 걱정만 한다고 피해갈 수도 없는 일방통행 길에서 마음만 조급해한다.

이젠 이만하면 되었다 싶어도 어느 순간 또 쓸 일이 내달아 그만큼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인생을 조금 알다 싶으면 또 첩첩산중이고, 걱정도, 응어리도 아는 것만큼 자라나 보다.

자신의 세상은, 자신의 눈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보고 체득한 것이 전부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늘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자신의 마음의 크기에 따라 세상의 크기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으로 본 세상과 몸으로 본 세상은 다르기에, 늘 스스로 갈등과 번민에 쌓이게 된다.

마음으로는 그것이 옳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이익인데 실재로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제약이 바로 환경이다.

가장 큰 제약은 경제적인 돈이겠지만, 시간이나 장소, 또는 육체적인 제약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약을 뛰어넘어야 자신이 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이러한 제약들을 인식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그런대로 적응하여 넘어갈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러한 제약들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될 정도로 크게 보이게 되고, 결국 실패에 따른 좌절의 충격이 고스란히 마음에 쌓이게 되는 것 같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마음의 응어리가 아닐까 싶다.

살면서 어디 마음의 상처 하나쯤 마음에 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므로, 이러한 마음의 상처가 마음속에 쌓여 응어리가 되지 않도록, 서로 간에 이해하려는 마음의 자세와 많은 대화를 통해 마음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스스로 열린 마음으로 일상을 즐겼으면 좋겠다.

당당하게 삶을 마주하고 사는 사람은 오늘에 전념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내일을 기다린다고 한다.

이제라도 오늘이 내게 있어 후회가 되지 않도록 당당하게 마주 보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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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공허한 것도 없다.

사람의 행위는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의도도 있지만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나를 누가 보아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무리 멋진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미소를 지어도 그것을 보아줄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없다.

누구나 집안에서는 편안한 옷이나 씻지 않은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로 아무렇게 지네지만,

문밖에라도 나가가되면 머리를 빗고 화장도 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갖추게 된다.

결국 누구나 남을 의식하며 살게 마련이다.

사람은 남에게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에서 어쩌면 만족이라는 것을 느끼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한창 인생에 대해 고민하던 파주시, 적성종합고등학교, (현, 경기세무고등학교) 시절, 난 대관령을 넘을 때마다 태백산맥을 담고 싶어 했다.

태백산맥은 수만년을 지나면서도 한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있을 때가 없다.

늘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품고 있는 산과 바위, 그리고 나무와 바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굳건하게 차가운 눈보라와 폭풍우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지는 흔들릴지라도 줄기는 그대로이듯이, 남자답게 스스로에게 주어진 일을 숙명처럼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다가오는 시련을 덤덤히 넘길 줄 아는 산맥의 의지를 닮고 싶었었다.

그러나 지금 중년이 되어 돌아보면, 그렇게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혹은 꿈에 대해 다짐했던 시간들은 내게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철없이 지나버린 것 같다.

내면의 의지가 박약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시류에 편승하여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내게 다가오는 도전에 대해 피해 다니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남에게는 마치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가식적인 사탕발림만 해왔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조금 별종인 것 같다.

내가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 중에도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

어쩜 난 늘 내 안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음속에는 너무나 멋지고, 굳센 기상과 아름다운 생각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늘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한다.

그래서 편협하고, 먼저 다가서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뒤에서 궁시렁거리기 일쑤고,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슴앓이를 하는 그런 국외자인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은 너무나 많아 넘쳐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스스로의 행동을 제약하고 산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언제부터인가 혼자가 너무나 익숙하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말하고, 홀로 산책하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고...

오히려 사람의 번잡함이 싫어져 자신만의 공간으로 누에가 고치를 만들 듯이 끊임없이 내 안에 안주하려고만 한다.

분명히 세상은 혼자만이 살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런 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세상과 멀어지는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우울해진다.

청춘은 항상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육체의 능력고는 관계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혼자라는 외로움은 마음속의 열망은 타고 남은 재처럼 허망할 때가 많다.

배가 꺾일 정도로 커다란 웃음을 웃어본 적도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가슴 뻑뻑한 감동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저 두리뭉실 넘겨가면서 살아도 되건만, 왜 그리 나이가 들수록 눈에 밟히는 일들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분명 아직도 난 살아가야 할 날이 많다.

이제라도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더불어 즐거움을 나누는 생활이 될 수 있도록,

나만의 생각에서 벗어나  젊은 가슴으로  젊은 날 그 꿈처럼 산의 겸허함과 포용함을 배우며 살아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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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따까움



부모란 존재는 마르지 않는 돈지갑과 같다.

그래서 부모는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만능인이어야 하고, 언제나 가난하지만, 부자여야 한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개성을 갖는다.

노래방에서 부르는 18번이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이, 자신만의 향기가 있다.

또한 사람마다 얼굴과 모습이 다르듯이, 각자에게는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이 있다.

그러므로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과 기쁨이 다르고, 살아가는 삶의 가치가 다르다.

시인은 시를 쓸 때,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연인은 사랑을 나눌 때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사람은 모두다 자신만의 개성을 충족시킬 때 최고의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돈이나 물질적 욕망의 충족이 최고의 행복이 되지 않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들로 인해 행복에 대한

흥망성쇠가 좌우되는 것도 사실이다.

돈을 많이 소유한 사람보다 사람의 향기를 품고 사는 사람이 더욱 친근함을 느끼게 되고, 오래 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인 것 또한 틀림없다.

사실 부모로서 늘 우린 아이들에게 들러주고 싶은 얘기들은 아마 이런 것들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급격히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서 이런 인성교육은 무시되어 버리고 오로지 대학과 취업을 위한 교육으로 변모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한다 해서 행복한 것도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가능하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도의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불쌍하다.

미래에 대한 꿈을 꿔야 할 나이에 꿈을 가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하고 새로운 것을 하려 해도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과연 앞으로 아이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학창시절 부모님과 선생님의 뜻에 따라 배운 지식들이, 인생의 초석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기에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부모는 자신이 써야 될 돈을 줄이면서까지 아이들에게 공부는 시키면서, 예절교육·성교육.

또는 사회라는 공동체에서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교육은 등한시한다.

자신의 삶을 자신 있게 걸어가는데 정작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많은 시간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또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것은,

그들만의 무언의 약속과 책임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의식만 있어도 아마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저 내가 아이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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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외면당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무엇을 의식하지 않고 살기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내가 무엇을 간절하게 원한다고 해서 얻어질 것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진정 살아가면서 영원하게 변하지 않고 내 곁에 머물러 있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누군가를 간절하게 사랑하는 마음도 그렇고, 변치 않는 친구에 대한 우정도 그렇고, 내 의지를 뒷받침해 줄 건강이나, 타인에게 신세지지 않을 정도의 재산이나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 내 자신을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안 되고 저것은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항상 할 수 있기를 원한다.

돌아보면 나의 의지대로 살아온 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다.

나는 매일 나를 돌아보고 항상 살아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되고 그러다 잠들 시간이 오면, 어제와 같이 포기하고 잠을 잔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내 인생은, 텅 빈 세상에 희망이란 아무런 꿈 없이 사라지는 나를 보게 된다.

“나와 내 가족과 나의 미래를 위하여 하루하루 무엇인가를 하고 살아야 한다,” 란 강박관념이 나를 사로잡는 밤은,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요즘은 난 하루하루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한다.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더 이상 좋아지지 않더라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내 스스로 세상을 속이지 않고 살아왔듯이, 아직 남아있는 나의 인생 역시, 세상 속에서 외면당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Canon EOS 5D Mark III | 1/200sec | F/2.8 | 0.00 EV | 70.0mm | ISO-1000 | Off Compulsory | 2014:06:02 13:39:18레이싱모델 윤채빈



부부의 정



이별의 아픔 중 가장 큰 것은 아마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다 헤어졌더라도 자주 볼 수 있다면 오히려 쉽게 잊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예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면, 더 간절히 그리워하게 되고 오래도록 가슴 한구석에 살아있는 사랑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아프고 슬픈 기억조차도 시간이 흐르면 그저 행복한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어쩔 수없이 서로 가슴에 남아있음에도,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남겨진 사랑은 어쩌면 이별이라고 말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요즘 난 부부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한마디로 부부란 장맛과 같다고 정의하고 싶다.

오래 묵을수록 깊은 맛이 더하는 장맛과 같이 부부 역시 오래도록 함께 살아봐야 서로의 속 깊은 정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경험이 쌓여 지혜가 자라듯이, 부부 역시도 고난을 함께 극복하면서 살다보면 저절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억지로 무엇을 바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곁에 다가가 서로를 지키는 울이 되어 주게 되는 경험은 사실 젊어서는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부부는 사랑하여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함께 더불어 사는 동안에 얻어지는 정이 결혼 전 사랑보다 오히려 더욱 중요하다.

사랑하는 마음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된다.

결혼 초에는 서로 이런저런 배려 없이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사랑인줄 착각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아름다운 새소리도 잠을 자고 싶을 때는 단지 소음일 뿐이듯,

나만을 위해주는 사랑도 내가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육체적이 욕구가 강한 결혼 초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표현이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산다.

진정한 사랑은 육체적 욕망보다 마음의 소리가 스며나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오히려 더 큰 사랑이었음을 알게 될 때는,아마 중년이 되어야만 가능하지 않나 싶다.

살아온 세월이 한스럽고 상처가 되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 나름대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본 경험이 있다면

아마 진심으로 상대방이 그동안 자신에게 베풀어 준 마음 속 깊은 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젊었을 때보다 난 오히려 아내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젊었을 때보다 귀가 시간도 빠르고 집에서도 스스로 내가 할 일을 찾아 해버린다.

그것이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하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가 돌아오는 남은 시간동안 편안하게 드라마나 영화 혹은 7080 음악들을 함께 들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면 아내라기보다 편한 친구와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많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도 가급적 조심스럽게 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배려를 하면 결국 그 배려만큼의 사랑이 내게 온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결혼 초에는 이런 따뜻한 마음들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나의 욕심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답일지 모르겠다.

처음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모정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

누가 뭐라 해도 부부만큼 서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들이기에 서로의 입장에 서는 같은 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금만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결코 믿음을 배신하는 행동은 할 수 없다.

진주처럼 다투고 나면 내 마음 속 상처가 더 크고 깊게 나기 마련이다.

나만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바라보지 않고 더불어 산다는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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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충쟁쟁



사람에겐 마음이 원하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가족과 친구들, 또는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다.

눈을 뜨면 일상에서 늘 마주 대하게 되는 사이라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가급적 좋은 낯으로 대하여야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때때로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속 깊이 아픔을 간직하고 산다.

각각에겐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것일 수도 있지만,

본인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아픔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가 한가지지만, 여러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보면 세상은 다양한 색의 옷을 입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듯이 사람마다 다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고 내가 하기 싫어도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일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의 사정을 헤아려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돈독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동안 난 어쩌면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말로는 늘 남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나의 입장만 챙기고 살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어머니나 형이나 아내의 입장을 안다는 것은 마음으로가 아닌 머리로만 그런 척 하였을 뿐이었다.

실제로는 친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속 좁게 보였을까? 란 생각에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면 그만이다.

아버지로 남편으로 아들로 살면 된다.

현재의 위치에서 주어진 삶에 충실하면 그만인 것이다.

홀로 고민하고 아파하기 보다는 내 가족과 내 이웃과 함께 나누고 살면 된다.

정치나 경제는 몰라도 날 바라보고 날 기다리는 내가 지켜줘야 할 사람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하고 세상에 불만을 토하면 다치는 건 자신뿐이다.

세상으로 인해 상처받고 세상의 외로움에 헐벗어도 돌아갈 곳은 바로 가족이다.

때문에 자신의 삶에 치우쳐 가족마저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힘들어도 돌아가 쉴 곳이 없는 사람만큼 초라한 사람은 없다.

철중쟁쟁이란 말처럼, 은연중에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삶에 녹아 빛이 나기 마련이다.

남과 부딪쳐 다투지 않아도 나를 알아 달라 말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주변에서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게 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포장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사람과 세상살이는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람이 속한 곳이 바로 세상살이인 것이다. 

사람을 잘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을 먼저 이해해야 비로소 알 수 있듯이, 사람을 알아야 세상살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사람이 중심일 수밖에 없음이다.

사람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결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

얼굴이 빛나면 등 뒤는 그림자가 지기 마련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만 하면 바보가 된다.

하늘 일마다 이익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슬픔이 있어 기쁨은 배가 되고, 불행이 있어 행복은 더욱더 빛이 나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서 좋고 유익한 것들 뒤에는 반드시 그에 따른 반대 개념의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함께 품고 가야 한다.

너무 자신의 곁 모습과 이름에 신경 쓰면 오히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항상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가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보다 조금 뒤에 걸어가면 어떤가?

남보다 조금 모자라고 가난하면 어떤가?

스스로 삶에 부끄럽지 않고, 내게 가치를 주는 주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갈 수 있다면 족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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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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