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언저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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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생이라는 길을 간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작정 그 길을 걸어갈 수는 없다.

어떨 때는 뛰어서 가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쉬엄쉬엄 걸어갈 때도 있다.

뛰거나 걷는 동안은 목적지가 항상 눈앞에 있는 것 같아도 막상 다가서면 더 멀리 도망쳐버린다.

그렇게 인생의 목적지는 생각이 자람에 따라 변해가는 것 같다.

뛰어가는 것이 좋은지 걸어가는 것이 좋은지 그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바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서둘러 뛰어갈 것이고, 여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천천히 걸어갈 것이다.

서둘러 뛰어가노라면 주변을 돌아보기 어렵고, 반면 천천히 걸어가면 때를 맞추기 어렵다.

이처럼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 또한 생기는 법이다.

그러므로 인생에 있어 성공이란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잃는 것을 최소화시키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난 요즘 왜 사는지 물어보고 싶다.

누구 말마따나 숨을 쉬고 있으니까 그저 살 뿐인 것 같기도 하다

하루가 삶에 보태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이란 흐름에 동승을 하여, 사라지는 기분이다.

무슨 의미를 찾는다거나 누구에게 도움을 준다거나 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다.

오히려 이렇게 존재가치 없이 방관하며 사는 게 차라리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때로는 그런 무기력함이 싫어 기분전환이라도 할라치면 도리어 탈이 나고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활력이나 즐거움은 고사하고 오히려 그로 인해 벌어진 일을 추스르기에도 버겁다.

젊었을 때는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했지만, 근래에는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모두가 그저 그런 사람으로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것저것 따져보게 되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어떻게든 그 이유를 받아들이고 싶어서다.

사람은 현재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설령 그것이 나중에 잘못된 선택이 되어 후회로 남을지라도 말이다.

하루하루의 기분이나 생각이 다르듯 지식이나 경험이 성장함에 따라 옳음이 달라질지라도, 사람은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현재의 가치를 지향하는 방법뿐이다.

그것이 때로는 욕망이란 이름으로 매도될지라도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삶의 의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욕망은 이렇게 삶에 더해지는 것보다 덜어질 때가 더 많다.

욕망 하나를 채우면 또 다른 욕망이 어느 틈엔가 나타나 아우성 부리듯 그 자리를 채워버린다.

그래서인지 몸이 위험에 처할 때는 마음이 편한데, 오히려 몸이 편할 때는 마음이 아프다.

이와 같이 욕망이 곁에 머물러있을 때는 만사에 의욕이 넘치는데 욕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기력감만 남는다. 

그래서 욕망은 삶의 의미요 돌파구다.

가능하면 한 곳에 머물러있지 말고 바쁘게 움직여라.

오늘 내가 움직이고 걸어간 공간만큼 내 삶도 넓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자신의 생각 안에 자신을 가두고 움직이기를 게을리 하면할수록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후회뿐이다.

그러므로 욕망을 줄이거나 없애려는 노력보다는 그 욕망이 옳게 자라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더하는 일임을 마음 깊이 명심하라.


Canon EOS 5D Mark III | 1/200sec | F/2.8 | 0.00 EV | 200.0mm | ISO-1250 | Flash fired, compulsory flash mode | 2014:06:02 14:03:14레이싱모델 손성민



쓰지 않아 생기는 마음의 빚보다 써서 얻는 가벼움이 더 좋다



나는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어차피 그 돈을 쓰면서도 이것저것 잡생각이 많아 기분 좋게 쓰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돈을 쓰더라도 낯도 나고 기분 좋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돈이 없어서 아니면 쓰기 싫어서도 아니면서 나도 모르게 계산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만나는 그런 못난 사람 말이다.

왜 그리도 얄팍하게 변해버렸을까?

누군가에게 배신당했거나 실망한 경험이 많아서 그럴까?

아마 지금 와 되돌아보면 돈으로 고생하시던 부모님을 지켜보면서 그 가난이 몸에 배어서가 아닐까 싶다.

돈을 써야 할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선뜻 먼저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돈을 쓰면서도 남 보기에 초라하게 비춰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얄팍하다는 의미는 하는 짓이 속이 뻔히 들어다 보이는 행동이나 말을 뜻한다.

한마디로 남에게는 박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중적인 잣대로, 속 보이는 짓을 예사롭지 저지르는 것이다.

그 사람은 부모에게나 일가친척, 심지어 멀리 있는 지인들에게까지, 철따라 이 곳 특산물을 사 보내주는 성의를 보인다.

마치 당연하듯 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부럽기조차 했었다.

그 사람을 통해 난 못난 나의 얄팍함을 보는 것이다.

예로부터 <돈은 거지같이 벌어 정승처럼 써야 한다.>고 했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나 모양새가 달리 보이기도 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 돈을 제대로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생각은 늘 이렇게 하면서도 막상 올바르게 돈을 쓸 상황에, 처하면 선뜻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런 후회들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솔직히 돈을 버는 이유는 쓸 데 쓰기 위해서가 아닌가?

부모에게 아내와 자식에게조차 쓰지 못하는 돈은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 걸까?

어쩌다 고향 집에 들였다가 내 지갑 사정 때문에 부모님께 적으나마 용돈이라도 드리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고 눈물이 목이 막힌 것처럼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었다.

넘어지면 다칠세라 호호 불며 일으켜주시던 부모님을 생각한다면 그 어찌 돈에 연연할 수 있을까?

어쩌다 지인에게서 돈을 빌려달라든가 보증을 서달라는 부탁이라도 들을라치면,

그동안의 친분이나 도움은 망각하고, 자세한 이유나 사연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먼저 거절부터 하는 것이다.

빌리는 금액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이고 기간이 짧으면 들어줘도 무난할 터인데 말이다.

입으로는 우정은 돈보다 귀한 것처럼 말하면서도, 작은 손해조차 보지 않으려는 심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어울리지도 않은 핑계로 거절하는 얄팍함이 난 싫다.

돈은 나중을 생각하면 누구도 돈을 쉽게 쓰기 어렵다.

하지만 돈을 써야 할 때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바로 현재라는 것이다.

투자의 돈이 되었든 아니면 낭비가 되었든, 현재 어떻게 돈을 쓰느냐에 따라 미래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얄팍함이 지나쳐 정작 씀으로 인해 장래 이득이 되는 것까지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쓰지 않아 생기는 마음의 빚보다 써서 얻는 가벼움이 더 좋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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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아야 행복하다



요즘은 진정한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고들 한다.

TV라도 볼라치면, 소위 우리나라에서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편싸움만 보게 된다.

물론 나 역시 그런 부류가 아니라고 내세우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자신의 양심만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양심은 곧 삶의 기준점이기에, 자신의 마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가치를 판단할 만큼의 마음공부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행복은 누가 거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노력의 결과임과 동시에 마음이 느끼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심리상태가 진정으로 행복한 것인지 정의하기 어렵고,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갸름하기 어렵다

따라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행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만의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이렇게 내 마음에 행복이란 인식을 정립하는 과정이 바로 철학공부라 할 수 있다.

요즘 인생이란 화두를 꺼낼라치면 모두 머리를 흔든다.

심지어 이 바쁜 세상에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 무슨 개똥철학이냐? 하고 놀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몸과 마음의 조화야말로 진정한 건강이라 믿기에, 이런 다소 얄팍한 인생 공부나마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로움을 느끼거나, 스스로의 삶에 대한 후회나 우울증에 빠지는 것은, 바로 나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서다.

스스로 늙어 감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나이에 어울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행복도 어쩌면 자신에게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목표로 자신을 학대하거나 고통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젊었을 때 운동장 열 바퀴를 쉼 없이 돌았다고 현재 채 한 바퀴도 돌지 못하는 자신을 탓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한 방법으로는 철학공부만 한 것은 없다.

이처럼 철학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그 앎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상대방 역시 더 잘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아마 요즘처럼 나 스스로 자신을 절제하며 살아온 경우도 드물지 않나 싶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상황에 몰려도, 가급 그 화가 입이나 표정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노력하곤 한다.

말로만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하지 말고, 진정으로 상대방의 입장에 설 수 있도록 긍정의 마음으로 유연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화를 내려다가도 불쑥 나 혼자 웃음 지을 때가 많다.

마음가짐이 변해서인지 스스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것부터 변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철학 공부가 아닌가 싶다.

철학은 바로 자신이 살아가는데 기준점이 되는 가치관이나 인생관 또는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사람마다 얼굴이나 모습이 다르듯이, 생각이나 가치가 다름을 인정하면 서로 다툴 이유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생각이나 가치를 받아들이면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그렇게 삶의 행복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야 더 행복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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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그 쓸쓸함에 빠지다



불현듯 오늘 일을 하다 창문 너머를 바라보게 되었다.

창 너머에 비친 은행나무에서는 은행잎이 노란색 비를 뿌리듯 떨어지고 있다.

누렇게 메말라버린 잡초가 스러진 위로 노란색 융단이 깔린다.

그리고 그 위로 나의 인생이 잠시 머문다.

어떤 사람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어떤 사람은 청춘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고 자위하듯 말한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자신이 늙어 감을 자각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는 말들일 것이다.

이처럼 나 역시 어느새 과거를 그리워하는 가을 끝자락에 서 있는 것이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한없이 남아있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가을의 바람결도 왠지 모르게 차갑게 느껴진다.

겨울이 떠나 봄이 오고, 봄이 흘러 여름이 오고, 여름이 흩어져 가을이 지나간다.

떠나고 흐르고 흩어지고 지나가면, 한 해는 나이처럼 나의 인생에 더해지고, 나는 그 나이를 힘겨워 한다.

이제는 세상의 법칙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어도 좋으련만 내 마음은 항상 이렇게 까탈스러워 한다.

거리를 지나다 만나는 가로수의 붉은 단풍이 처량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늘어간다.

나무 밑에 수북이 쌓여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화려함 뒤에 숨은 죽음을 향한 고통스러운 몸짓인양 허무하다.

사무실 탁자에 놓인 화분에 늘 싱싱하게 자라던 화초도 노랗게 변하다 못해 어느새 붉게 말라간다.

이 모두가 그저 시간이 만든 잔상임에도 나의 마음은 그 속에 머문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 고통에 익숙하듯이, 삶을 이해해야 계절의 쓸쓸함을 느낄 수 있다.

젊었을 때는 쓸쓸함이 단지 감정의 분출이지만, 나이가 들면 그 쓸쓸함이 바로 마음이 내는 소리다.

눈은 계절을 바라보지만, 마음은 인생은 바라본다.

만추의 여백을 바라보듯 말이다.

어찌 인생을 아름답다 슬프다 말할까?

내 힘으로 단절하지 못하는 그리움이란 노래를 가을 언저리에 서서 찬바람 소내 지르듯이 불러 본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에도 최상이었노라고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만든 노래다.

시간 앞에 서서 가을 그 쓸쓸히 부르는 노래를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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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언저리에는 



사람의 하루는 만남의 연속이라 할 것이다.

문을 열고 나가면 먼저 바람과 만나고, 차를 만나고, 가로수나 행인과 만나고, 직장과 동료와 만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만 인지할 때도 있을 것이고, 상대방이 인지할 때도 있을 것이다.

더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더러는 그냥 스쳐지나가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인연들이 나의 움직임에 따라 교차되어 지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만남에 목적을 앞세운다.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만남은 가급적 피하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다.

힘과 권력이 있어 잘 보여야 할 사람이라면 없는 시간은 쪼개서라도 만나고, 힘이 없는 사람은 형편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이처럼 만남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되기보다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략된 느낌이다.

물론 이 모두가 내가 살아가기 위한 처세일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속 보이는 짓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남은 어느 정도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저 맹목적인 만남은 그 인연이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음을 늘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목적을 가진 만남이라 해도 그 목적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 한정 지어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말이 좋아 친구지 친구에도 격이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어쩌면 이익이나 계산적인 이런 속물적 행태도 바로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만남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처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나고 싶지 않지만 주변의 눈을 의식한 체면치례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 때문일 런지도 모른다.

만남이 즐겁기만 남긴다면 왜 이별에 슬퍼하고 아파하겠는가?

이렇듯 인연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상흔처럼 몸 어디엔가 남아있기 마련이다.

아픈 기억이든 즐거운 기억이든 인연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리움만 남게 되는 것 같다.

이별이 너무 고통스러워 죽을 만큼 원망했던 사람도 시간이 흘러 각자의 삶이 된 지금은 그조차 그리움이 되었다.

완벽한 사람보다 조금 모자라게 보이는 사람이 더 정감 가듯이 만남도 조금은 부족한 사람이 편하다.

나이가 들수록 앞을 향해 보는 시간보다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그것은 아쉬움이나 후회해서가 아니라 그리워서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리움이 더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한 사람은 바로 진정으로 내가 마음을 준 사람이다.

나에게 잘 해준 사람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가져간 사람이다.

나의 마음을 가져간 사람은 어려울 때 도와주고 힘들 때 부축해 준 사람보다 더 보고 싶어진다.

자신의 부족함은 어려움을 겪어봐야 알듯이 삶의 소중함은 이별을 겪어봐야 알 수 있다.

사람의 감정이란 아무 때나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이기에 마음의 잔정을 숨기기에는 그리 눅눅하지 않다.

사실 정이 든다는 것은 기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슬픈 일이다.

모자람은 어려움을 통해 알 수 있고, 삶의 소중함은 이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만남은 이별이란 아픔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만남은 그리움이 있어야 하고 소중히 여기는 진심이 함께 해야 한다.

그 사람과 함께 라는 그 자체가 좋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가장 큰 단점은 정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구속하는 행위다.

정은 은연중 분명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려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본인에게는 좋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인연은 함께 함으로 즐거움이 되어야지 강제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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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억새처럼 저 홀로 흔들리면서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을 억새를 닮아가는 것 같다.

청춘의 짙푸른 빛이 사라진 곳엔 어느새 메마르고 말라비틀어진 앙상한 몸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작은 바람결조차도 감당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을 사는지 모른다.

말이야 늘 의지 견장 한 듯 내세우지만, 이익이 되는 일이나 사람에게 마음이 쏠리는 것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자기합리화 하는 하루하루를 산다.

일들을 돌아보면 모두가 안타깝고, 사람을 돌아보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만큼 가슴 한쪽이 시리다.

그러나 계절이 겨울을 향해 흘러가듯이 나는 그렇게 겨울을 기다리듯 살아가야 한다.

지나온 발자국을 지우기보다는 그 발자국이 나의 인생이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에 순응하는 것이 생명을 가진 것들의 숙명이듯, 이미 지나온 것들은 그저 이력일 뿐 진정 내 삶이 되지는 못한다.

이렇게 나의 삶은 종착역을 향한 서러운 몸짓을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의지 견장하게 살고 싶지만 난 늘 다짐에 그친다.

왜 그렇게 모자라고 부족한 것은 많은지, 왜 그렇게 한스럽고 원망스러운 것은 많은지 투덜거리며 산다.

그렇다고 생각해보면 딱히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조금만 내 삶을 방해해도 그 모두가 미움의 대상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제발 조금만이라도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조급해하는지 모르겠다.

가을들녘에 저 홀로 흔들리는 가을 억새처럼 살아도 그만인 것을 말이다.

사람과의 인연은 때로는 행복을 선물 하지만 또 때로는 불행도 가져다준다.

자주 만나는 사람끼리는 싸울 일도 말할 내용도 풍부 하지만 한 편으로는 친한 거리만큼 요구사항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체면도 차려야 하고, 자존심도 지켜야 하고, 도움도 베풀어야 하고, 사랑과 관심도 줘야 한다.

물이 필요하면 물도 주어야 하고 배가 고프면 밥도 챙겨줘야 한다.

그래야 그 관계를 지속으로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는 사람은 항상 좋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서로의 사정이나 상황에 따라 일방적인 요구나 도움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이 때마다 오해와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만큼 피곤한 일도 없을 것이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사람 심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때로는 긍정으로 때로는 부정으로 그 삶에 더해져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스스로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인생의 주인이라기보다 하인으로 산 날이 더 많았음을 자각하게 된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며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어했음에도, 돌이켜보면 어떠한 것이 내 삶이었나 싶다.

마치 가을 억새가 거친 바람을 견디기 위해 흔들림에도, 나는 그 흔들림조차 비난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것이 남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 인양 믿으면서 말이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을 맞으며 가을 억새는 오늘도 흔들릴 것이다.

나 역시도 가을 억새처럼 흔들리면 살았던 날들이 중심을 잡고 산 날들보다 많았을 것이다.

이 모두가 이익을 쫓아 표리부동한 탓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삶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렇게 옳음이나 그름조차 분별이 무의미할 정도로, 이제는 겨울을 맞이하는 저 가을 억새처럼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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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떨어지듯 계절은 가고



사람은 미래를 향해 길을 떠나는 나그네와 같다.

그 길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쭉 뻗은 평탄한 길인지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인지도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떠미는 대로 죽음이란 종착역에 이르는 순간까지 멈춤 없이 걸어가야 한다.

골목길 낡은 벽돌담 위로 담쟁이 잎이 붉게 물들어 간다.

갈라지고 비틀어진 담벼락 사이로 힘들게 물들어가는 덩굴이 마치 내 모습 같다.

길가에 무성하게 자라던 잡초들도 어느덧 누렇게 채색되어 앙상한 몸통만 바람에 흔들린다.

도로가 한적한 곳 가로수가 서 있던 곳마다 수북이 낙엽이 쌓이고 그 위로 이별의 아픔이 스쳐 간다.

이처럼 온 산과 들 그리고 계곡은 단풍이 그린 오색의 물결로 가득하다.

아직 나무에 매달린 잎은 그 나름대로 물들어 가고, 물들다 못해 떨어진 단풍은 온 세상을 무지개로 채우고 있다.

오색 단풍이 시간과 계절을 넘어 퇴색되고 부서져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바람에 날리고 물결에 떠돌다 그 생을 다할 것이다.

예전 책갈피 속 말린 단풍잎 하나 사랑의 고백이었건만, 어느덧 세월이 어깨에 쌓이듯 낙엽이 되었다.

단풍이 떨어지듯 계절은 가고 사람도 떠나버렸다.

밤사이 소리 없이 내린 눈 서리를 이불 삼아 자다 보면, 언젠가 또다시 화려한 단풍으로 태어날 것을, 단지 버려짐이 원망스러워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음을 잊고 사는 날들이 늘어만 간다.

고운 단풍이 들기 위해서는 일교차가 큰 맑은 날씨의 도움이 필요하듯이, 매년 저 혼자서는 그 붉음조차 다 채우지는 못한다.

산이 높을수록 단풍은 오래가기 어렵고, 계곡이 깊을수록 단풍이 그 붉음을 더하듯이, 정상에 집착하기보다는 마음의 즐거움이 먼저다.

죽음은 곧 생명이요 버림은 곧 얻음이라, 떠남이 있어 만남이 있고 슬픔이 있어 기쁨이 있는 법, 영원한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라짐은 잊음으로 인해 생기듯, 사랑은 가슴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느낄 때 서로에게 영원이 되는 것이다. 

미리 단정하지 않고 바라봐야 진실을 볼 수 있다.

오늘도 단풍의 화려함을 쫒아 이산 저산 찾아가지만, 그렇다고 항상 예쁘고 고운 단풍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서리에 맞아 검은 점이 새겨지고, 쭈그러들고 시들어버린 단풍을 보는 날이 더 많다. 

때로는 단풍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쓸쓸함마저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사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산다.

하지만 인생은 슬픔 뒤에 즐거움이 어려움 뒤에는 편안함이 숨겨져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짧은 화려함을 뒤로하고 떨어져야 하는 단풍의 숙명도 우리들 삶과 한치 다를 바 없다.

매년 변함없이 다가오는 계절이지만 그 계절조차 단지 가슴으로만 느껴야 하는 사람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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