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걸린 가시는 삶의 걸림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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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스리기



요즘 내가 가장 공들려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음 다스리기이다.

왜냐하면 난 앞으로 남은 인생동안 정말 후회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남에 대한 비난이나 헐뜯음보다, 믿음과 사랑으로 이해하고 감사하며 고마워하면서, 나의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어서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앞서서는 결코 내 마음이 편하거나 즐거울 리 없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혹여 몸에 배인 나쁜 말들이 입에서 나 올까봐 늘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산다.

불의불식간 나오는 나쁜 말들은, 대게 다른 사람의 의견이 나와 다를 때 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되고, 넘어가도 되는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걸려 쉽게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병이라도 생길 듯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한두 번 참고 지나다보면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변했음을 알게 된다.

은연중 누군가로부터 좋아졌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마음을 고치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미움과 원망에 가려 보지 못했던 그 사람의 참된 모습과 도움이 떠오를 것이다.

정작 내가 그 사람에게 준 것보다 그 사람으로부터 더 많은 도움과 혜택을 받았음을 알게 된다.

예전의 그 도움과 은혜로움을 기억하면서 어찌 나쁜 말을 할 수 있을까?

저절로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증가할 것이다.

한번 호감을 가지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예쁘게만 보인다.

마음으로 감사하면 그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기 마련이고, 자연스럽게 그 얼굴은 빛이 나기 마련이다.

매일 만나면 무엇엔가 화가 난 듯한 찌푸린 얼굴을 보면서 그 어찌 미소가 지어질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속담처럼 내 얼굴이 밝아야 상대방 역시 웃을 수 있다.

이처럼 인간관계는 모두가 상대적이다.

사람의 가치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이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것만 믿으려는 습성을 가지기보다는, 마음에 유익한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어찌 메마른 마음의 토양에서 새로운 싹을 틔우고 가꾸려 하는가?

마음에 내 아닌 어느 누가 물을 주고 거름을 줄 수 있을까?

마음의 양식은 나눔과 포용을 통해 키워가야 한다.

어려움을 돕는 것은 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돕는 것이다.

나 아닌 누군가의 생각이나 지식을 포용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역만큼 내 함은 커진다는 것이다.

내 눈이 볼 수 있는 것만 보고 믿으려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두는 내가 먼저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이 생각나거든 진정으로 그 사람에게 고마워하라.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과 친구라는 이름으로 네가 받은 것이 있다면, 그 모두가 마음의 선물이다.

비록 그 때는 눈에 띠일 정도로 큰 선물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선물이야말로 내 영혼에 각인된 선물이니까 말이다.

내 것을 나눠주고도 스스로 웃을 수 있는 선물은 마음의 선물밖에 없다.

이런 마음의 선물이 쌓여야 진정 행복할 수 있음이다.


Canon EOS 5D Mark III | 1/200sec | F/1.2 | 0.00 EV | 50.0mm | ISO-640 | Flash fired, compulsory flash mode | 2014:06:02 15:26:04레이싱모델 서아란



세상만사



세상만사는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지만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수도 없는 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송골매의 세상만사란 노랫말처럼> 생각하기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만사라 해도 내게 닥치는 순간부터 그것은 내게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 일 없듯이 지나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내 일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어떨 때는 눈에 보이는 뻔한 일이라도 그저 지나쳐주기만 바랄 때도 있다.

하기 정말 하기 싫은데 나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외통수 같은…

아마 누구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거의 모든 일들이 하나 같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쉽지 않은 정말 다섯 손가락조차 채우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삶이기에 넘어가야 한다.

아마 세상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면, 사진을 찍었을 때 세상과 하나인 듯 느껴지는 사람일 것이다.

마치 함께 오래 산 부부의 모습이 서로 닮는 것처럼, 내게 어울리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이미 네모난 모양을 동그라미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세상으로의 순응은 타협이 아닌 바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가진 자가, 힘 있는 자가 법대로 하자는 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나 젊어 한창 잘 나갈 때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잘 알지 못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잘못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삶이 아닐 것이다. 

후회하고 안타까워하고 원망하고 그리워해야 삶이다.

우습게도 그렇게 간절했던 세상은, 세월이 지나 원망이 그리움으로 변해갈 때쯤에야 비로소 조금씩 볼 수 있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너와 나의 생각이 아닌 공통의 생각에 부합되는 기준이다.

그러나 삶이란 바로 나로 인해 생기는 현상을 의미하기에 그로 인한 결과 역시 내 몫이라고 본다.

삶의 합리는 행동은 <나>를 기준으로 삼고, 생각은 <너>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만의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조차 보게 될 것이다.

살다 보면 은(恩)도 쌓이고 원(怨)도 쌓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은(恩)을 갚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원(怨)을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갚기도 하고 또 때로는 풀기도 하고 또 때로는 세월 속에 잊기도 해야 한다.

가슴으로 간직하기도 해야 하며 아예 처음인 듯 넘어가기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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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있어야 행복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지난 것들을 빨리 잊는 것이 좋다.

심지어 행복했던 순간들조차 말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상대적이기에, 오래 기억하면 오히려 슬픔으로 변질되기 쉽기 때문이다.

사람은 항상 나보다 못한 것들을 바라보고 살았으면 싶은데 이상하리만치 사람은 위만 바라보고 산다.

그래서 행복한 기억은 짧고 슬픈 기억은 오래간다.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행복하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그저 단순히 곁에 있을지라도…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을 통해 행복해지고 사람을 통해 슬퍼지기 때문이다.

평소 그렇게도 모질게 대했던 사람조차 막상 곁을 떠나면 누구보다 더 슬픈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처럼 정은 함께 함으로써 기쁨과 슬픔이 섞여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지난 시간을 한번 돌아보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그 기억이 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그런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 한편으로는 몹시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 모두가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였기에 말끔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된 탓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지난 것들은 가급 빨리 잊는 것이 좋다.

생활의 여유가 있어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남을 배려할 수 있다.

낭떠러지 위에 서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살면 결코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절박한 삶이 과연 행복을 담보할 수 있을까?

사람에게는 자라고 배우고 결혼하고 돈 벌어야 할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시기라는 것은 영원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인생은 주어진 시기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각자 얼굴이나 모습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듯이 성공의 기준도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행복이라 여기는 것일지라도 모두에게 행복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행복은 각자의 선택이며 몫이기에,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일수록 빨리 기억에서 지워 내야 할 것이다.

어쩌다 가족끼리 모여 과거 얘기를 하다 보면 아마 느낄 것이다.

남자들은 과거에 대해 그리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상하리만치 여자들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음을 말이다.

시부모의 시집살이라든가, 시누이들이 서러움 준 것이나, 남편에 대한 섭섭한 일들에 대해 너무도 정확하다.

한참 듣다 보면 정말 그런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라 당황스럽기조차 하다.

그런 상처를 많이 간직하면서 그 어찌 행복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가급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지난 시간 동안 철없던 잘못이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일랑 하루 빨리 잊을 것이다.

행복하게 살아가기도 바쁜데 이미 지난 과거를 붙잡고 하소연할 필요는 없다.

늘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대할 것이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살아도 충분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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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




사람은 한치 앞을 모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할지라도 반드시 그 예상대로 되리라는 확신은 할 수 없다.

다만 현실에서의 노력을 통해 미래를 좀더 현실로 끌어들여야 자신의 미래가 더욱 풍요로울 것이다.

아마 단시간에 일이나 인생의 결과를 알 수 있다면 어느 누가 오늘을 열심히 살겠는가?

이처럼 우리는 미래를 모르니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우린 늘 절박하게 산다.

그래서 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이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서, 아프고 상처 될 행동이나 험한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고, 늘 건강하리라는 생각 때문에, 자극적이고 짜고 매운 음식이나 해로운 술과 담배도 하고, 늘 곁에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에, 부모나 가족에게 소홀히 하게 된다.

그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곁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한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과 같은 인연이란 거미줄로 엮어진 소중한 사람들의 삶과 섞여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은 때로는 이익으로 또 때로는 손해로 내 삶과 은연중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일 당장 병이 들고 죽음에 이를지라도 남겨질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소중한 사람의 불행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좌절하고 물러서는 것도 습관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난관이라도 도전하는 의지도 습관이다.

 물론 포기하고 물러선다고 해서 내 삶이 없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는 것도 현실 상황이지만, 가능하면 포기는 당장이 아닐지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안 되면 상황이 돌아올 때까지 차근차근 노력하며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흔히 욕망이 눈을 가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처럼 하고 싶은 욕심이 너무 과하면, 도리어 자신의 눈을 가릴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눈팔지 말고 외길로 가야 한다는 말은,

그 목표를 향한 변함없는 의지를 말하는 것이지, 주변의 상황까지 살피지 말란 말이 아니다.

평소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키면서 가도 충분하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시간이 끊임없이 주어진다면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의 대부분은 일의 성격에 따라 주어진 환경이나 시간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불안감으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는데도 조급해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자신감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 삶의 경험 때문에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긴다.

그래서 죽음이 곧 완성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미래를 모르기에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나로 인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말이나 행동을 가려서 해야 한다.

잠시 한 발자국 물러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굳이 모난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미래를 알 수 없다고 하여 무슨 짓이든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상처는 남뿐만 아니라 자신도 헤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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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걸린 가시보다 기쁨의 존재이기를



요즘 왠지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답답함을 느낀다.

공연스레 일상이 여유가 없어지고 무엇인가 꽉 막힌 듯한 기분이 든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이런 사정과 관계없이, 모두들 자기들 하고 싶은 것들을 서슴없이 요구하고, 그 요구를 들어주지 못해 거절해도, 은연중 그 요구가 나를 비켜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대로 흘러간다.

살아갈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존재감이 뚜렷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존재감을 스스로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주장과 처지는 엷어지고 책임감만 더 커져 간다.

무슨 말을 해도 모두 건성으로 듣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분명 난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을 걸어왔을 뿐인데, 되돌아 바라 본 길은 그저 적막강산이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지금까지 지나온 길보다 앞으로 걸어갈 길은 더 힘들고 두려움을 그 어찌 모를까?

하루하루,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위안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어루만져야 하는 날들이 쌓여간다.

때로는 곤히 자다가 가위에 눌린 듯 잠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마치 무서운 꿈이라도 꾼 듯, 두 번 다시 잠을 청하기 싫을 정도로, 두려움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있다.

마음 한구석에는 혹여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병마나 위험에 대한 불안이 숨겨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나만 그럼 것이 아닐 것이다.

목에 걸린 가시는 삶의 걸림돌이 아닐까 싶다.

일상을 평탄하게 살면 좋겠지만, 아마 걸림돌이 없는 삶은 이미 삶이 아닌지도 모른다.

커다란 밥을 삼켜 밀어 넘기기도 그렇고, 내 버려둔 채 돌아가기도 그렇다.

그러나 이런 걸림돌은, 꼭 낯선 사람에게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마주하는 사람일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만 비켜 가면 그뿐인데, 마주하는 사람이기에 그조차 어렵게 한다.

이상하리만치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상황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믿기보다는 서로를 믿지 못할 때가 더 많아진다.

그것은 아마 상대방을 위해 양보해도 좋은 경우보다, 책임져야 할 경우가 그만큼 많아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어쩌다 상대방을 믿고 편하게 얘기한 것들이, 오히려 오해가 되고 싸움의 빌미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냥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것들도, 책임 때문에 넘길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이 바로 목에 걸린 가시일 것이다.

만나면 변함없이 말을 하고 일도 같이 하면서도 무엇인가 마음의 거리감이 있는 것이다.

마치 변비 걸린 사람처럼 무언가 다하지 못한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다.

만나서 말끔히 털고는 싶은데 그럴 수도 없는 딱한 상황 말이다.

어쩌면 자존심일 수 있는 이런 상황들을 버릴 수 있어야,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즐길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 어른치고 명절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쨌거나 명절은 돈이나 명예보다는, 마음과 몸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돈이나 마음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지면, 아무리 잘해도 서운한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명절은 미움과 원망보다는, 그동안 도움을 준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사람이기보다는, 그 가시를 빼 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Canon EOS 5D Mark III | 1/200sec | F/2.8 | 0.00 EV | 88.0mm | ISO-1600 | Flash fired, compulsory flash mode | 2014:06:02 15:31:40


령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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